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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현재 법률에 따르면 모든 군인은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킨다고 강조하는 만큼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미군정은 상당히 free했다. 당에 가입한 상태였던 사람들도 선서 한 번만 하면 전부 군인으로 모집했기 때문에 당에 가입한 상태의 군인이 꽤 있었다. 정부 수립된 지 2개월밖에 안 되었던 당시에 그래도 천조국 흉내를 내고 싶었던 건지 이걸 그냥 방치해두다시피 했다. 당시 가장 핫한 정치적 쟁점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찬반 의견이었다. 우익에서는 "북조선이 먼저 단독정부를 수립했으니 우리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 통일정부는 북조선을 밀어버린 뒤에 세우면 된다."라는 입장이었고 좌익에서는 "이대로 가면 영구분단이다! 단독정부 수립 반대!"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 가지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지금보다 더 많았으면 많았지, 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시기에 신분을 숨기고 좌익 활동하던 군인인 김지회라는 작자는 전남 광주에 있었던 4연대에 전속되었는데, 한편 4연대에서는 골칫거리로 여기던 불온사상자들을 여수에서 신설될 14연대로 전부 보내기로 결정해버렸다. 이승만과 박헌영 중에서 누가 더 낫냐는 질문에 박헌영이라고 대답한 놈들만 추려서 재편성했다 카더라. 덕분에 1948년 5월 초에 신설된 14연대의 요직에는 당연히 김지회 등 좌익 남로당 계열의 인물들이 들어차게 된다. 이들은 새롭게 모집할 신병을 전남 동부 지방에서 주로 찾았는데 인원이 부족했던 탓에 그냥 건강해보이고 "이승만 개새끼!"만 외치면 전부 받아줬다. 덕분에 경찰에게 쫓기던 좌익운동가(쑻) 청년들과 경범죄자들이 대량으로 입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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