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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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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트칙령과 이후== 그는 왕이되었지만 스페인을 등에 엎은 가톨릭 세력들이 깽판을 벌였고 수도였던 파리에서는 성문을 닫아 앙리 4세를 못들어오게 막았다. 그러나 그는 개신교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도움을 얻으나 결국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정식으로 개종하고 대관식을 했다. 그는 대관을 하고나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낭트칙령을 만들었다. 종교 내전을 끝내고 프랑스를 안정화 시켰으며 뛰어난 행정능력으로 국민들도 그를 좋아헀고 성격도 좋아 '선량왕' 이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왕은 후계자를 생산해야하기 때문에 대 학살 사건으로 사이가 나빠진 마르그리트와 이혼하고 메디치가의 마리와 두번째 결혼을 한다. 참고로 앙리 4세는 아주 혈기 왕성하여 정부를 여럿두어서 섹스 마스터 라는 별명까지 얻는다. 하지만 그는 가톨릭 골수팬들로부터 20여 차례 암살위협을 받았고 결국 56세의 나이로 가톨릭 광신도에게 암살 당한다. 그가 죽은 뒤 왕위에 오르는 게 [[루이 13세]]. [[분류:프랑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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