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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모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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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세 == [[기원전 580년대]]와 [[기원전 570년대]]에 이집트를 다스리던 [[와히브레]]가 무능한 행동만 골라서 하자 국민들과 군인들은 모두 빡쳐있었다. 이 틈을 타 아흐모세 2세가 군인들을 선동해 와히브레를 죽입시다 와히브레는 우리의 원쑤 이딴 식으로 선동을 해 죽창을 들고 와히브레를 쳐냈다. 이후 와히브레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으로 런해 이집트 원정 때 쳐들어왔으나, 아흐모세 2세가 막아내는 과정에서 전사했다. 아흐모세는 파라오의 예를 갖추어 와히브레를 매장했으며 그의 무덤을 사이스에 만들었으나 현재는 찾아볼수 없다. 이후 이집트는 아흐모세 2세의 치세 아래서 그럭저럭 편한 시기를 보냈다. 정복에도 재능이 있어서 키프로스 섬 및 그리스 일대에서도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이때 그리스에 물건을 존나 팔아대면서 떼돈을 벌기도 했다. 한편 동쪽 너머에서는 [[기원전 550년]]에 [[메디아]]의 속국이었던 [[안샨 왕국]]의 [[키루스 2세]]가 반란을 일으켜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라는 대제국을 세웠다. 페르시아는 [[기원전 539년]]에 바빌로니아를 다스리던 [[벨사자르]]를 쳐내고 바빌로니아를 정복해서 중동의 패자가 되어 있었다. 이집트 인근까지 세력을 확장한 페르시아는 이집트를 떠보기 시작했다. [[키루스 2세]] 또는 [[캄비세스 2세]]로 추정되는 페르시아 [[샤한샤]]가 의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 온 것이다. 아흐모세는 의사 한 명을 강제로 잡아서 보냈다. 이 의사는 억지로 페르시아에 가야 했고, 아흐모세 2세에게 복수할 준비를 했다. 캄비세스 2세와 짱친을 먹은 의사는 '아흐모세의 딸을 왕비로 맞으면 어떨까요?'라며 세치혀를 놀렸다. 캄비세스는 '그거 좋은데'라는 반응을 보이며 결혼동맹을 이집트에 요구했다. 근데 아흐모세는 자기 딸이 인질이 되는 상황이 꺼려졌는지, 지가 몰아냈던 와히브레의 딸을 자기 딸인 척 위장시키고 대신 보냈다. 근데 이 양반도 병신이었던 게, 와히브레의 딸은 당연히 자기 아빠를 쫓아낸 아흐모세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페르시아에 가서 자기는 아흐모세의 딸이 아니라고 폭로했고, 캄비세스 2세는 이에 분노해서 이집트 침략을 준비했다. 이렇게 이집트 vs 페르시아 맞다이를 서로 준비하면서 전쟁각이 터지기 직전에 아흐모세 2세가 죽었고, [[기원전 526년]]에 다음 파라오로는 아들 [[프삼티크 3세]]가 즉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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