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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왜 이들이 첫 1세대 페미니스트가 되지 못했는가? == 처음부터 여성 운동의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삽질만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여성 권한이 강한 이유는 바로 프랑스 혁명 때 아낙네들이 앞장서서 바스티유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음 등장했던 1920년대~1930년대 한국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일본의 식민지]]였다. 즉, 당시 한국 신여성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김정숙<ref>임시의정원 의원장을 지낸 김붕준 선생의 딸이다. 한국 광복군에서 무장투쟁에 기여한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로,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남과 북의 그 폐기물들이 아니다.</ref>, [[유관순]], [[안경신]], [[남자현]], [[조신성]]<ref>맹산 일대에서 여러가지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ref>, [[조순옥]]<ref>조소앙 선생의 조카다. 한국광복군 복무.</ref>, [[지복영]]<ref>지청천 장군의 따님이다. 한국광복군 복무.</ref>, [[오광심]]<ref>조선혁명군 총참모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백파 김학규 선생의 와이프로, 부부가 함께 조선혁명군에서 활동했다. 직접 총 들어서 싸우는 일보다는 조선혁명군 입대를 장려하는 홍보, 그외에도 각종 사무를 처리했다.</ref> 열사나 [[윤희순]] 장군처럼 한국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여성들은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나마 [[나혜석]] 같은 용감한 자들이 변절한 [[최린]]을 차는 등 일제에 소극적이나마 반항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들이 생각했던 자신들의 사명은 페미니즘의 본분인 여성권익도 아닌 '''자유연애를 널리 퍼뜨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유연애가 정상이면 그러려니 넘어갈 건데 그것도 건전한 게 아니었기에 더욱 문제가 되었다. 물불 안 가리고 부랄만 달렸으면 꼴리는 대로 떡치는 게 이들이 말하는 '자유연애'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장관리]]는 기본이었고 [[윤심덕]]처럼 [[아침드라마]], [[막장드라마]] 수준의 [[불륜]]은 옵션이었다. 그래서 《B사감과 러브레터》를 쓴 [[현진건]]처럼 당시 먹물 좀 먹었다는 남자들은 겉으로만 이들을 신여성이라면서 빨아주고 뒤로는 성욕에 뇌가 함몰된 병신으로 취급했다. 오히려 진짜 여성으로서 정작 도움이 필요했던 [[위안부]]가 고통받을 때 '''신여성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러니 한국에 페미니즘이 제대로 뿌리내릴 리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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