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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 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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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영국 주도의 삼각무역 == [[19세기]] 영국이 인도, 청나라 쪽에서 벌인 무역. [[1757년]] [[청나라]]의 [[건륭제]]가 갑자기 [[공행]] 무역이라는 걸 실시하면서 무역을 규제하자 영국은 씹손해를 보게 되었다. 마침 그 때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개 씹 떡상 중이었다. 원래는 인도의 면직물 산업이 우위에 있었으나, 영국이 방적기와 방직기 등을 만들어내면서 영국의 면직물 산업이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은 면직물을 인도에 팔고 인도는 그 대가로 은을 지불하는 형식의 무역이 성립되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많은 은을 쓸 수 있게 하려면 당시 은 보유량이 제일 많았던 청나라와 인도 간의 교역을 하게 만들어야 했다. 즉 인도가 모종의 제품을 팔고 청나라가 그 제품을 은으로 사면 인도에 은이 많아지게 되고, 그 은으로 영국의 면직물을 사서 영국에 은이 많아지게 된다 이 말씀. 그래서 인도에서 그 '모종의 제품'을 재배해서 청나라에 팔았는데 그것이 하필 [[아편]]이었다. 청나라에서는 이미 [[1685년]]부터 아편이 퍼지기 시작했고 [[18세기]] [[강건성세]] 때도 아편 중독자가 많아서 아편 수요는 항상 많았다. 이제 영국<->인도<->청나라 무역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웃긴 건 영국은 그렇게 마약을 팔아서 번 은으로 또 청나라의 차, 비단, 도자기 같은 제품들을 샀다. 결국 청나라에 다시 은이 돌아오고, 다시 청나라의 은이 많아지면서 이 모든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 셈 영국은 중국 사치품을 실컷 누리고, 인도의 면직물 산업도 짓밟고 청나라도 아편으로 짓밟는 일석 삼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편 문제가 심해지자 [[임칙서]]가 아편을 싸그리 모아 폐기했고, 삼각 무역을 건드린 임칙서를 본 [[대영제국]]은 [[아편전쟁|혐성질]]을 하러 간다 === 둘러보기 ===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4단원}}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5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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