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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오리지널 쓰촨이라고 할 수 있는 분지지역은 본래 파촉(巴蜀)이라 불렸다. 이지역은 삼성퇴 유적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졸라 [[아즈텍]]스러운 문명을 일군 동남아 + 티베트혼종계통의 민족들이 살았지만 [[진나라]] [[소양왕]]이 이 두나라를 정복하면서 중국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촉나라에 속했던 성도, 면양, 아안, 자양등 서부지역은 진나라의 학살, 사민정책등으로 인해 빨리 동화되었지만 옛 파나라에 속한 동부지역은 통제가 심하지 않았고 지금의 투자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투자족으로 불렸던 파나라 유민들은 [[인디언]]들마냥 먹고살기 좋은 지역은 털리고 산간지역으로 쫓겨난게 함정. 이후 그저 그런 동네로 남았지만 [[유비]]가 입촉한 뒤 [[촉한]]이 건국되면서 대대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진나라때 만들어진 도강언도 [[제갈량]]때 보수, 증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촉한이 조위에게 멸망하고 [[오호십육국시대]]때 성한(成漢)이 건국되고 북조와 남조간의 전쟁터가 되면서 좆망했다. [[수나라]]가 대륙을 통일한뒤 지역사회가 안정되면서 크게 성장하기 시작, 당나라 중기쯤 가면 성도가 남경으로 승격되고 [[안사의 난]]때 당현종이 성도로 피난갈 정도로 잘나가는 지역이 되었다. 당나라가 망한 뒤 전촉, 후촉이 세워졌고 허구연날 지도가 스펙터클하게 변하던 장강중하류지역과 화북과 달리 비교적 평화로워서 잘나갔다. 965년 [[송나라]]가 후촉을 무너뜨리면서 송나라에 편입되었다. 이후 송나라 치하에서 졸라게 잘나갔지만 [[몽골 제국]]의 침공때 몽골에게 털리고 [[맹공]]사기캐가 수복했다가 다시 털리면서 초토화되었다. 원나라가 사천등처행중서성(四川等處行中書省)을 설치하면서 사천이란 이름이 붙었다. 1371년 [[명나라]]가 사천을 점령하면서 명나라땅이 되었다. 명나라 말기 장헌충이 폭동을 일으켜 사천지역을 점령, 대서라는 이름의 정권을 세웠지만 [[청나라]]한테 털렸고 [[삼번의 난]]이 터지면서 또 전선으로 변하면서 1681년까지 전란이 일어나면서 다시 초토화되었다. 강건성세를 거치면서 복구되나 싶었지만 [[백련교도의 난]]터지고 [[태평천국운동]]의 주역인 석달개가 들어왔다가 뚝배기깨지고 [[신해혁명|보로운동]]터지고 각지 좆소군벌이 등장하면서 다시 개판이 되었다. [[장제스]] 북벌이후에도 소규모 군벌들이 계속 설치다가 [[중일전쟁]]으로 장제스가 수도를 충칭으로 옮기면서 잠깐 정리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라서 [[국공내전]]때 국민당이 청두로 옮겼을 때 중공으로 튀어버리면서 공산당에게 점령되었다. 그리고 국민당은 [[국부천대|좆만한 섬으로 빤쓰런]]. 티베트에 속한 아바 티베트자치주 서부지역과 간쯔 티베트자치주를 제외한 지역은 [[청나라]]가 [[준가르]]에게서 [[티베트]]를 빼앗고 사천성에 강제편입시키기 이전까지 [[티베트]]에 속했다. 청나라가 망한 뒤 시캉성(西康省)이 신설되면서 티베트계 소수민족이 많이 살았던 양산이족자치주와 함께 분리되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중공]]수립이후 중공이 티베트를 점령한뒤 다시 사천성에 편입된 것이 지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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