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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 {{심플/헬조선}} [[신라]]시대부터 국가가 지방행정제도를 정비하면서 만든 특수한 행정구역이다. 시대마다 취급이 달랐다. 절대다수가 [[하삼도]]지역에 밀집되있었고 그 이북지역에는 [[수원]], [[평택]]지역제외하고 일부 현에 한두개 있는 수준으로 매우 적었다. 비정이 일반 행정구역인 주군현에 비해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쉬울땐 [[괴산군#감물면|감물면]](충주 감물내미부곡), [[처인구#백암면|고안리]](양지 고안부곡)처럼 친절하게 위치를 설명해주고 어려워도 리밑의 작은 마을에서 민담, 유적등으로 흔적이 드러나는 경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사료가 거의 없어 이름만 언급되는 [[발해]], [[삼국시대]]의 행정구역에 비하면 비정난이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 고려이전 === {{인용문|이제 살펴 보건대, 신라에서 주군(州郡)을 건치(建置)할 때, 그 전정(田丁) 호구(戶口)가 현이 되지 못할 것은, 혹 향(鄕)을 두거나 혹 부곡(部曲)을 두어 소재(所在)의 읍에 속하게 하였다....(중략)...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 지리지는 다시 여기에 쓸 것 없고, 정인지(鄭麟趾)가 편찬한 《고려사》에도 또한 《삼국사》를 그대로 기록하였다. 이제 저명한 성씨(姓氏)는 그 성씨의 근본되는 땅을 싣지 않을 수 없으므로 주관육익(周官六翼)에 의거하여 증거대었는데, 지금 상고할 만한 것은 겨우 열에 하나 둘이며, 모두 읍마다 고적(古跡)의 밑에 달아두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여주목 등산장조}}[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grpId=&itemId=BT&gubun=book&depth=5&cate1=G&cate2=&dataGubun=%EC%B5%9C%EC%A2%85%EC%A0%95%EB%B3%B4&dataId=ITKC_BT_1299A_0080_010_0010] [[고구려]], [[백제]], [[신라]]모두 일개 구단위정도의 작은 부락을 통치하는 부족국가에서 넓은 땅을 가진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기시작했다. 하지만 짱깨식 군현제를 그대로 갖다붙이기엔 애로사항이 많았는지 좀큰 부족국가가 있던 읍락은 [[군]], 좀 작은 부족국가가 있던 읍락은 [[현]]으로 정비했다. 이렇게 군과 현을 정비하는중 현으로 정비하기 거시기할정도로 매우 작은 읍락을 [[부곡]]과 [[향]]으로 정비하면서 한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부식]] 개새끼가 [[삼국사기]] 지리지를 쓸 때 기록을 안한 것 때문에 더 자세한 것에 대해선 알 수 없다. === 고려 === {{불쌍}} 대개 [[향#鄕|향]], 그리고 고려때 신설된 [[소(행정구역)|소]], 장과 함께 특수행정구역으로 편제되었으며 지역의 향리인 부곡리가 민정을 맡았다. 존나작은 깡촌을 위한 일반 행정구역이 쁘띠 [[반역향]]으로 전락한 기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왕건]]이 [[후삼국시대]]에 각지를 점령하면서 자기들에게 저항한 호족과 그들휘하에 있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때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기준으로 원간섭기이전까지 '''381개'''의 부곡이 만들어졌는데, 이중 [[하삼도]]에 '''352개'''의 부곡이 만들어졌다.<ref>[[쌍도국]]에 '''203개'''가 만들어졌고 [[전라민국]]에 81개, [[멍청국]]에 68개부곡이 만들어졌다. </ref> 하삼도 이외지역의 경우 [[수원]], [[용인]], [[평택]], [[안성]]지역에 1몰빵되있던 경기도의 19개 부곡과 강원도 [[강릉]], [[정선]]등 일부지역에 깨작깨작있던 10개부곡이 전부. 부곡의 주민들은 일반주민보다 일은 더 하고 세금도 더내면서 취급은 더 못했고, 지역 향리들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5품이상의 고위관직은 꿈도 못꾸는 꼴이 되었다. 하지만 [[원간섭기]] 부곡에 살던 사람이 [[원나라]] 사신에게 뱃지를 받았거나, [[권문세족]]이 되었거나(이게 대부분이다.), 소수 몽골침공시기 몽골군을 패퇴시킨 부곡에 한해서 현으로 승격되기도 했다. === 조선 === {{해체}} 몽골침공때 수많은 부곡, 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짐 + 향, 부곡제도가 가진 심각한 비효율성 + [[노비종모법]]으로 늘어난 노비(?)등으로 인해 대거 통폐합되었고 그나마 일부 속부곡으로 남은 것도 [[한명회]]의 [[오가작통법]]으로 시작된 면리제가 실시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조선이 향, 소, 부곡, 처, 장, 그리고 속현을 통폐합시킬 때 수령이나 지역민이 이들의 소속을 지꼴리는대로 정해버린탓에 [[통감부]]의 월경지정리정책과 [[부군면 통폐합]]이전까지 조선 행정지도를 누르렁으로 만드는 주옥같은 월경지와 견아상입지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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