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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지탑리, 송산리, 무정리 주성(主城)등지에서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중에서 규모가 쩌는건 지탑리였다. 이후 청동기시대에도 지탑리, 송산리등지에선 청동기시대 부락이 형성되었고 [[고조선]]시기 주요 부락이 되었다. 고조선이 무너진 뒤 지탑리, 토성내동, 구룡리에선 [[낙랑군]]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이중 지탑리토성이나 사리원시 당토성이 [[대방군]]의 소재지였던 대방현(帶方縣)이 존재했다. 313년 낙랑군이 [[고구려]]에 함락되면서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에선 조파의(租坡衣)라고 불렸고 고구려는 동선면 선령리일대에 휴류성(鵂鶹城)을 쌓고 그 일대에 휴암군(鵂巖郡)을 세웠다. 이시 유적으론 대청리 고분군이 있다. 고구려 멸망이후 762년 5월 [[신라]]가 휴류성을 다시 쌓아 군을 복구했고 [[경덕왕]]식 한자명으로 서암군(棲巖郡)이라 불렸다. [[고려]]초기 봉주(鳳州)로 승격되었다. 995년 방어사가 파견되었으나 현종초기 방어사가 폐지되고 [[황주군|황주목]]의 속주가 되었다. [[충렬왕]]시기 지봉양군사(知鳳陽郡事)로 고쳤다가 후에 봉주로 바뀌었다. 1413년 州를 山, 川등으로 바꾸는 지명개편에 따라 봉산군이 되었다. 1523년, 전염병때문에 백운산 아래에 있는 지금의 봉산읍으로 치소를 옮겼다. [[임진왜란]]시기 의병장 김만수가 봉산지역 의병을 지휘하며 [[좆본군]]의 임진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참전하기도 했다. 15~19세기까지 황해도지역 백자생산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 이지역 장시를 기점으로 [[봉산탈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사리원면이 개발되면서 좆망행을 탔다. [[8.15 광복]]이후 사리원읍이 [[사리원시]]로 승격되면서 13면을 관할하게 되고 [[소련군정]]과 [[북괴]]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인하여 서종면, 초와면, 덕재면, 쌍산면, 기천면, 영천면 2개리, 문정면 태봉리가 [[재령군]] 삼강면 4개리, 은룡면 4개리에서 은파군이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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