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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이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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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시험무대가 러일전쟁이나 중일전쟁이었는데 알다시피 그 당시 두 나라의 상태는 매우 허접했기에 이런 전술도 먹혀들었다. 사실 러일전쟁에서도 육군끼리의 전투만 두고보면 일본 측 사상자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일본의 군부는 난공불락이였던 기관총 진지를 뚫어낸것에 의의를 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러일전쟁]] 전황-요동 전선 참고 사실 황군이 이 반자이 전통에 둔 진정한 의의는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のぎ まれすけ, 1849년 12월 25일 ~ 1912년 9월 13일)의 빛나고도 훌륭한 업적 때문이다. 청일 전쟁에서 당나라 짱깨들로 개꿀을 빤 노기는, 러일 전쟁이 발발하자 뤼순 공방전에서 13만 병력 중 6만을 '정신력'으로 갈아 잡수고, 할복을 시도했으나, 메이지 덴노의 만류로 자제하게 된다. 정확히는 고지를 오를 때마다 시체로 산을 쌓아 엄폐물로 이용하면서 공격하였다. 여기까지면 괜찮았으나, 이 양반이 메이지가 뒈지자 따라서 할복을 하는 아름다운 짓거리를 해버리고, 이 모습이 사무라이 정신 또는 주인이 죽으면 따라 뒈지는 개새끼(헬열도어로 군신)로 인식되어 황군 교범에 반자이 돌격이 당당히 등재되게 된다. 황군교범에서 반자이 돌격의 의의는 기습돌격으로 적군의 기세를 조기에 제압하고 전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명명...(현실은 아군의 기세가 조기에 제압당함) 무려 도쿄에 이 노땅의 '신사'(할복 후 군신으로 추대 받았음으로..)가 있고 매년 축제도 있다고 하니, 때맞춰 도쿄로 놀러가면 헬조선 독립에 지대한 공헌을 원조 틀딱의 신사에 방문하여 쿨하게 썩소를 지어보도록 하자. 결과적으로 이 전술이 마음에 든 다이닛뽄테이고쿠의 군부는 이 전술을 무기의 살상력과 훈련상태가 이전 상대와는 매우 다른 미군에도 써먹었고 수많은 군인들을 신사로 직행시켰다. 당연하게도 반자이 돌격을 강행한 일본군 대부분이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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