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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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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과정 == {{반달리즘}}{{개판}}{{기레기}} {{인용문|나는 사람들이 더 밀려오기 전에 어서 발굴을 끝내야겠다고 작정하고 밤을 새워 발굴작업을 진행시켰다. 매장(埋葬) 방식과 유물들의 원상(原狀), 무덤 내부의 세밀한 기록들이 그 바람에 크게 소홀하게 다뤄졌다. 말하자면 고분을 통해 알 수 있었을 수많은 정보들이 내 실수 때문에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고고학자로서 내 평생의 아쉬움 중 하나다. 아무리 잘 했다고 해도 고고학적 발굴은 유적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정보 중 상당 부분을 절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때문에 무령왕릉은 1∼2년이 걸리더라도 모든 정성과 신중을 다해 발굴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얻어냈어야 했다. 그래서 무령왕릉 발굴 실수는 비단 내 자신의 아쉬움에 그치지 않는다. 나라와 국민에게 큰 죄를 짓고 말았다.|발굴책임자 서울대학교 김원룡 박사}} [[파일:무령왕릉18.12.18.jpg|썸네일|18.12.13일 방문당시의 무령왕릉의 모습이다.. 무령왕릉을 발굴당시 고대 무덤의 주인을 최초로 밝혔다는 점에서 최고라 꼽히지만, 엄청난 발견에 지나친 관심이 쏠린 나머지 체계적인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현장을 출입하는 기자들로 인하여 유물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해 지금은 무령왕릉 보호하기위해 따로 전시관을 만들었다. ]] 진짜 씨발 한국사뿐만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자국 문화재"'''를 이딴식으로 발굴한 적은 거의 없다. 얼마나 엠창이었냐면 일본이 '''"니네 그딴식으로 발굴할꺼면 차라리 우리한테 발굴 맡겨라"'''라고 할 정도였다. 앞서 서술했듯이 발굴은 정말이지 '''우연히''' 발굴되었다. 1971년 7월 5일 충남 공주에 폭우가 쏟아졌는데 이때만해도 송산리 고분군은 내용물이 싹 다 털려서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다만 백제시대의 유물이다 정도로만 추정되는 고분군이었다. 그런데 이 유적중에 벽화도 있었는데 비가와서 물이 고여서 벽화가 무너지려고 하니까 고분군 관리자가 배수로를 파려고 공사를 하는데 그동안 구릉으로 여겨졌던 곳을 통해서 물길을 내던 도중 이상한 벽돌들이 발견되어서 그대로 문화재청에 신고하였다. 문화재청에 와서 보니 틀림없는 벽돌무덤이고 입구가 벽돌로 막혀있었다. 발굴조사팀은 당연히 다른 무덤들처럼 털렸을꺼라고 생각하고 무덤입구에 제를 지낸 후 벽돌들을 걷어냈는데 하얀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이는 수천년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던 차가운 무덤의 내부의 공기와 외부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만나면서 수증기가 생기는 현상으로 이 무덤은 여태껏 단 한번도 도굴이 되지않은 처녀분이라는 증거였다. [[파일:무령왕 발굴현장.jpg]] 그런데 그 와중에 어디서 소문을 듣고왔는지 기레기들이 몰려왔고 발굴현장에 난입하여 마구잡이로 셔터를 눌러댔고 심지어 사진을 찍기위해 발굴조사팀을 살해협박까지도 했다 ㄷㄷ 기레기들은 아직 발굴중인데도 발굴현장을 무단으로 침입해서 발굴현장을 훼손했고 심지어 유물들을 발로 밟아 파손시키기까지 했다... 더이상의 발굴조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발굴조사팀은 발굴을 졸속으로 속행했고 단 17시간만에 발굴을 종료시켰고 현장보존을 할 여가도 없이 남은 유물들을 마대자루에 쓸어담았다. 현대 발굴에서는 있어서는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때 얼마나 개판으로 쓸어담았냐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014059 발굴 이후 38년이 지나서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무령왕릉 유물들 정리하다가 무령왕의 유골로 추정되는 뼛조각이 처음 발견되었다...] === 정부의 반응 === [[파일:무령왕비 은팔찌.jpg|썸네일|반인반신이 접었다 폈다 했다던 팔찌(국보 제 160호)]] 당시 공주박물관 김영배 관장은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유물들 중 보존이 잘 된 황금유물을 간추려 청와대로 올라가 박정희에게 보여줬는데 박정희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이거 진짜 순금임?"'''이라며 '''왕비의 팔찌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이걸 본 김영배 관장과 서울대 교수 김영춘 박사는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기겁했다고 한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틀딱들도 이 일화는 차마 쉴드를 못칠정도로 당시에는 유물 보존의 가치에 무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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