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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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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레새끼의 헛소리 == {{개소리}} 아래 간디의 결점은 2010년대 기준 윤리를 적용해서 그런 거다. 간디는 1869년 생으로 19c 사람인데 100년이 넘는 동안 새롭게 바뀐 21c 기준 윤리로 재단하면 병신이 될 수밖에 없다. 틀딱들 예의없다고 ㅈㄹㅈㄹ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틀딱의 틀딱 세대인 다른 사람들은 간디에 비하면 얼마나 윤리적인 삶을 살았을까? 미국의 지식인들도 20c 중반까지 흑인차별 안하면 병신이었다. 한국 1950년대에는 국회의원(김두한)이 정부 관료를 패고 다녀도 사나이들이 싸움좀 할수있지 하는 미개한 분위기였고 70년대까지도 남편이 처자식들 조금씩 패는 거는 집안 사정이니 터치할 수 없는 일이었고 80년대에는 폭력은 좀 아니지만 언어폭력을 일삼아도 터치 할 수 없었다. 90년대마저도 좁은 버스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생아가 있건말건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미-개한 시기였던 것이다. 1900년대 초 인도는 과연 얼마나 더 나았을까 참고로 인도는 지금까지도 강간범보다 당한놈이 더 잘못한 국가이다... {{진실}} 는 지랄이고 위에새낀 무슨 간디가 천년 전 사람인줄 아나 보다. 간디가 언제 죽었는 줄 아냐? 1948년에 죽었다. 1940년대면 이미 인종 간 평등같은 현대적인 인권사상이 출현한지 오래고 이것들이 구시대적인 사고관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인류 보편적인 윤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논리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있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1940년대에 죽은 인물들 중 아직까지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간디새끼 정도로 사생활이 더러웠던 놈은 없다. 심지어 이새끼는 지가 유색인종 식민지인이라서 차별받는 걸 불쾌해했고 그게 좆같은 짓거리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간디가 무슨 문화 예술인이나 과학자도 아니고, 인권 운동가로써 위인 소리 듣는 새끼가 남아공 흑인차별이나 옹호하는 좆같이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 까이는거다. 20세기 인도가 아무리 좆같았다고 한들 어디 깡촌의 소수민족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새끼가 그지랄하는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 오늘날 수많은 평화적 시민운동의 창시자 ===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차별받고, 영국이 1차대전 지원하면 독립시켜준다 그래서 믿고 전쟁에 참여하자 그랬더니 통수맞아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퍼포먼스로 하층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당시 하층민들은 문자 자체를 몰라서 그런거 아니면 그런 거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행위는 선비짓하며 엘리트노름하던 인도국민회의 같은 애들은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지지를 바탕으로 폭력도 안 쓰면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고 단식하고 소금 퍼포나 물레 퍼포 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정치력과 명성을 얻었고 인도 독립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요즘에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가 떠벌떠벌대면 라디오고 tv고 인터넷이고 같이 떠벌려주지만 그런 거도 없고 국민들은 멍청한데 어떡하지? 바로 간디가 '소금 규제 반대해서 직접 바다로 몇날며칠 걸어가서 소금깃기', '물레돌리면서 다들 물레돌려서 영국산 대신 국산 씁시다','나 감옥에 있고 단식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영국때문이에요' 등등 대중적인 서민퍼포먼스(그리고 간디는 변호사 일 했지만 당연히 독립운동하면서 변호사 일을 놓아야만 했으므로 100% 퍼포먼스는 아니다)를 만들어서 큰 임팩트를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정치인도 따라하는 거다. 요즘같은 21c에야 이런 방식이 좀 알려져있지만 당시는 19~20c였다. === 영국의 인도 통치의 맹점을 찌른 전략 === 아무튼 그래서 수적으로 엄청 딸리던 영국인들은 엘리트, 소수민족, 소수종교를 포섭해 인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도국민회의같은 영국 유학한 친영 엘리트, [[시크교]]도, 이슬람교도, 구르카족, 싱할라족(소위 전투민족들이라 부르고 군인으로 써먹었다) 등등. 그런데 수많은 하층민들은 위의 간디의 퍼포먼스를 보고 여태껏 없던 방식에 깊게 감명받아 간디를 빨기 시작했다. 문맹에 무식한 하층민들은 간디의 실제 사상을 잘 몰랐지만 간디는 모든 소망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국민들이 간디를 따르니 간디를 죽일 수도 없고 내버려두자니 영향력은 커지고 해서 그냥 gg치고 가버렸다. 그래서 영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었는데도 인도가 빨리 독립한 거다. === 오늘날 인도의 아버지 === 인도의 역사는 오랜 분열과 각자 지역마다 나누어진 역사로, 영국이 인도 제국으로 묶은 게 인위적으로 컸다. [[인도]]만 봐도 알겠지만 공식언어만 10개가 넘고, 인구는 13억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인도에 있었던 왕국들, 마우리아 왕국이나 굽타 왕국, 무굴 제국 등은 기껏해야 최전성기에 북인도를 점령하는데에만 그쳤다. 애초에 남인도는 북인도와 따로 놀았다. 그리고 중국황제처럼 중앙집권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곽 지역은 그냥 황제에게 충성하기로 한 지방왕국이 다스리는 거였고(얘들은 제국이 흔들리면 독립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화를 거치며 부자연스럽게 형성된 매우 불안정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디는 간디 자신이 힌두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도의 통합과 연대를 강조함으로써 [[인도]]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이슬람 신자 많은 땅 정도만 나눠주고 오늘날 엄청난 영토와 인구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 반은 [[네루]]가 기여했다. 만약 인도가 분열되었다면 인도는 그냥 별볼일없는 찌질이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비폭력주의자로 명성을 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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