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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당시 조선 수군은 [[원균|전투지휘조무사]]가 상식적으로 질 수 없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함선 대부분과 수군을 용왕에게 바친 후 뒈짖해버리고 판옥선 12척만 남은 안습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선조|선좆]]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편입하자!" 같은 말을 싸며 하염없이 입으로 똥 싸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이게 왜 말이 안 되는 주장이었느냐면 일단 조선은 도로망 상황이 개씹창이었으므로 해상 수송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다. 게다가 왜군의 홈그라운드 전쟁터는 바다가 아닌 육지였다. 좆만 한 섬나라에서 십수 개의 가문들이 쪽본 통일을 외치며 앞놈 배때지 칼로 긋고 뒷놈 배때지도 칼로 긋고 그을 배때지가 더 이상 남지 않았으면 [[할복|본인 배도 칼로 긋고]] 하던 게 일상이었으니 하여간 왜놈들은 땅 밟고서 사람 배 긋기에 능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조선군의 배는 피지컬로 왜군의 배를 압도했다. 왜군의 주력이었던 세키부네(관선)는 대양 항해와 빠른 속력에 중점을 두고 만든 협저선이었다. 문제는 세키부네의 내구성과 덩치가 ㅈ밥이었던데다가 배 하단이 뾰족해서 어설프게 대포를 실어놓고 쏘는 순간 대포의 반동 때문에 고꾸라지는 수송선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갓조선의 판옥선은 배수량 많아서 전투 인원도 많이 타고 상하좌우에 포를 달아놓고 쏠 수 있는 왜구 담당 일진이었다. 좆본 수군이 판옥선과 유의미한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는 백병전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는데 접근 중에 포에 맞아서 박살이 나고 어설프게 들이받았다가 박살이 나고 가까스로 판옥선에 붙어도 판옥선이 세키부네보다 더 높아서 왜군은 시야 확보도 못한 채로 판옥선에 기어 올라가다가 위에서 떨어지는 총, 칼, 화살에 벌집핏자가 되었던, 임진왜란 내내 조선 수군과 좆본 수군의 전투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ㄴ 다만, 당시 왜군 무기 중에는 원시적인 수류탄인 '배락'도 있었기 때문에 백병전은 조선 수군 입장에서는 승선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위험했을 수 있었다. 아마 조란환 존나 갈긴 이유도 배보다 적 인마살상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신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도 우리의 선좆은 이러한 이점들을 파악도 안 한 채로 기어이 전장을 육지로 옮겨서 풍신수길이 바라던 정명가도의 요구를 백성들의 피를 제물로 삼아서 응해주려고 한 것이다. 으휴 정신병자 새끼;; 그러나 여기서 이순신 장군은 선좆의 아가리를 닫아버리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다. 이하는 그 유명한 장계의 풀버전으로, 유명한 부분은 볼드체로 표기한다. 時朝廷以舟師甚單 不可禦賊 命公陸戰(시조정이주사심단 불가어적 명공육잔) 이때 조정에서는 수군이 숫자가 너무 적어서 적을 막을 수 없을 거라며 공(公, 충무공 이순신)에게 육지에서 싸울 것을 명했다. 公啓曰 自壬辰至于五六年間 賊不敢直突於兩湖者 以舟師之扼其路也(공계왈 자임진지우오육년간 적불감직돌어양호자 이주사지액기로야) (이에) 공(公)이 장계에 가로되. 임진년 이래로 5-6년간 적이 감히 [[호서|양]][[호남|호]]로 직접 돌격하지 못한 것은 수군(舟師)이 그 길을 막았기 때문이었나이다. '''今臣戰船 尙有十二''' 出死力拒戰 則猶可爲也(금신전선 상유십이 출사력거전 즉유가위야) 지금 신(臣)에게는 아직(尙) 열두 척의 전선이 있사오니, 죽을 힘을 내어 (적을) 막아 싸운다면, 아직(猶) 할 수 있사옵니다. 今若全廢舟師 則是賊之所以爲幸而由湖右達於漢水 此臣之所恐也(금약전폐주사 즉시적지소이위행이유호우달어한수 차신핍소공야) 지금 만일 수군을 모두 폐(廢)하면 적은 곧 (이를) 다행으로 여겨 양호의 [[서해|오른쪽]]을 따라 한수(한강, 즉 도성)에 이를 것이오니, 이는 신이 (가장) 두려워 하는 바입니다. '''戰船雖寡 微臣不死 則賊不敢侮矣'''(전선수과 미신불사 즉적불감모아의) 신이 살아있는 한 적들은 우릴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요약: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좀 닥치고 있어라. 보는 이로 하여금 팬티가 앞뒤로 촉촉히 젖게 만들 좆간지 발언을 조정에 던진 이순신 장군도 사실은 원균이 말아먹은 꼬라지를 보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하 이제 어떡하냐..." 소리를 내뱉을 정도로 수군이 개작살이 난 상태였다. 남은 건 배설의 빤쓰런 덕분에 확보한 판옥선 13척, 호남 일대를 탈탈 털어서 가까스로 장만한 군량미와 병력 조금. 그마저도 그 병사들 대부분은 이미 승산이 없다고 속단하여 사기가 바닥을 때리고 있었다. 한편 왜군은 [[칠천량 해전|자기들을 복 날에 개 패듯이 패던 조선 수군의 자멸]]에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데다가 이번이야말로 빈털터리 조선 수군과 이순신의 목을 딸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여 군선 수백 척, 병력 수천 명이 백화점 마감떨이 초밥 세트 받아가려는 아줌마들처럼 우르르 몰려들어서 남해안에 집결하던 상황이었다. 이순신이 여기서 패배할 경우 서해안이 털리는 것은 시간 문제고, 왕은 서울의 커맨드 센터를 띄워서 평안북도 [[의주군|의주]]로 다시 옮겨야 할 판이었다. 아니, 서해안 보급로가 열리면 왜군이 평양에서 발이 묶이는 상황이 더 이상 없을 것이므로 의주로 튀더라도 붙잡힐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여기에서 밀리면 만력제가 명나라의 국운을 갈아넣지 않는 한 조선은 그냥 망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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