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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도쿄의 본래 이름은 에도({{Lang|ja|江戶}})였다. 에도는 칸토 평야의 스미다 강 하구에 위치한 도시로, 15세기 중반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에도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중부지역의 세력가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지역으로 전봉되면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데, 도쿠가와는 뛰어난 수완으로 이 도시를 지역최대도시로 육성하였으며 머지않은 훗날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을 꺾고 일본의 지배자가 되자 자연스레 도쿠가와 가문이 설립한 막부 또한 에도에 위치하게 되면서 이 도시는 일본의 실질적인 수도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간토 평야는 일본 최대의 평야였고 에도는 그 평야에서도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였으나 모든 자연적인 조건이 이 도시의 성장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프라의 확충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일례로 스미다 강 하구는 간척지가 많아서 지하수질이 쓰레기급이었다. 따라서 이는 인간이 마시긴 뭣했기에 에도 막부는 식수 공급원 확보를 위해 물좋은 타마 강과 상수도를 연결하여 에도의 식수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도시의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늘어난 쓰레기들은 사통팔달의 운하를 파서 이를 통하여 해결하였다. 에도는 전근대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청결성을 잘 유지했던 도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여하튼 이러한 에도 막부의 노오오오오력에 힘입어 원래 오사카나 쿄토보다 그 규모가 작았던 에도는 17세기 후반경에 일본 최대의 도시로 거듭나게 되고, 18세기 초엔 인구 100만을 돌파하여 세계 최대의 도시가 된다.(부정설이 있음) 특히 겐로쿠 시대가 리즈시절로 이 영향으로 현대시대에도 에도시대의 연호였던 '겐로쿠'가 경제호황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250년간 지속된 에도 막부는 기근, 사무라이 계층의 몰락 등 사회문제에 잘 대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흑선의 내항을 계기로 칼을 갈던 지방충들이 천황을 앞세워 명분을 얻고 죽창질을 시전하자 망하고 만다. 막부를 대신해 일본의 정권을 잡은 [[일본 제국|의회 신정부]]는 새로운 일본의 수도를 오사카, 쿄토, 에도 중 어디로 할지 고민한 끝에 에도를 수도로 낙점하였다. 이유는 상업기반도시인 오사카, 쿄토와는 달리 정치도시인 에도는 정치력을 잃으면 인력이 빠져나가 붕괴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에도 지척에 일본 최초,최대의 개항도시인 요코하마가 있어서 서구화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이때부터 에도는 원래 수도였던 쿄토의 동쪽에 있는 수도라는 의미로 도쿄({{Lang|ja|東京}})라고 불리게 된다. 막부가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수백개의 번이 난립하는 분권체제였던 에도시대와는 달리 메이지시대부터 전국의 모든 정치권력이 도쿄로 집중되자 도쿄의 지위도 예전 에도 시절보다 강화되었다. 도쿄의 정치권력과 커넥션을 잇기 위해 [[미쓰비시]], [[스미토모]], [[미쓰이]]같은 지방기업들이 줄줄이 상경하기 시작하면서 도쿄는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 산업, 그리고 문화 중심지가 된다. 이와 동시에 똥수저와 흙수저들의 폭동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러일전쟁과 제1차세계대전 종전후에도 어김없이 도쿄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빛과 그림자가 있는 도쿄지만 도시의 성장은 1923년 관동대지진에 의한 정체를 제외하면 지속되었다. 1930년 도쿄의 인구는 600만명으로 이미 인구규모 면에서는 뉴욕, 런던과 더불어 세계 3대 도시였다. 일본은 세계 열강들중 소련 다음으로 대공황을 가장 잘 극복하여 중일전쟁 기간에도 번영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군부의 삽질로 천조국에 선빵을 날리면서 이 도시 또한 암운에 휩싸이게 되는데, 도쿄 대공습으로 도시가 통구이가 되었다. 공습절정기에는 하룻밤새 폭격으로 10만명이 사망했을 정도이다. 도쿄 대공습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의 상징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는데 사실 2개 원폭투하 피해를 합해도 도쿄 대공습 피해보다 적은 수준이었다. 암튼 이 폭격으로 인해 도쿄는 건물몇채빼고는 모두 박살난 쑥밭이 되었고 지금의 도쿄는 이 아무것도 없는 쑥밭에서 새로 태어난 도시라고 볼 수 있다. 종전후 일본 경제가 다시금 성장하면서 도쿄도 다시 활력을 되찾는다. 흔히 좆문가들이 '일본경제 패망후 좆망했떠염~ 근데 한국전쟁으로 되살아남어염~' 이 지랄을 하는데 사실 40년대에도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소니]]를 비롯한 수많은 신생기업들이 종전 후 40년대에 도쿄에서 창업되었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제회복의 기운은 50년대 초중반에 한국전쟁 특수와 값싼 인도산 철광석의 수입으로 인하여 가속되었고 1964년 하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전 세계에 부활을 선언하였고 뉴욕과 함께 세계 2대장 도시로 자리잡게 된다. 이 때 뉴욕과 도쿄는 세계에서 인구 1,000만 명을 넘은 세계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엔 버블경제의 여파로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도시로 랭크되기도 하였다. 오죽하면 도쿄의 야마노테선 안의 땅을 다 팔면 미국 땅을 다 살수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당연히 사실은 아니었다. 도쿄는 1990년대 버블붕괴로 침체하는 와중에도 성장을 구가하게 된다. 경제에 지옥불이 켜지자 당황한 일본정부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전에 수도권에 걸려있던 각종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일본도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해진다. 20년전에 비해 일본의 수도권 인구는 800만명이나 늘었다. 동시대 일본 전체 인구는 고작 200만명 증가한 것에 비교된다. [[아베 신조]]의 집권이후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또다시 각종 수도권 규제가 해체되면서 건설붐이 일고 있다. 소비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긴자식스]]가 이미 완공되었고 마천루의 숫자도 늘어나는중. 또한 비교적 최근에 완성된 [[오다이바]]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도쿄 올림픽을 맞아 그동안 노후화된 시설도 전면 재건축을 하고 있으며 도쿄 인근의 주인없는 폐가를 개조해 외국인들을 위한 숙박업소를 만드는 정책도 펼치고 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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