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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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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자유당 (1951년)|자유당]]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선거다. 이때부터 지역구에 내보낼 후보자를 공천하는 '선거 전략'이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동안 후보를 전국에 한두 명만 내다시피 하던 유명무실의 잡탕 단체들이 자연스럽게 소멸되면서 선거에 참여한 정당 숫자가 10개로 정비되면서 제법 기틀이 잡혔다. 전쟁이 끝나고 수복한 지구<ref>경기도 연천군, 포천시 북부, 가평군 북면 일부, 강원도 철원군과 김화군 일부(1963년 철원군에 편입), 화천군, 양구군(수입면 제외), 인제군, 양양군, 춘천시(북부 일부), 고성군</ref>는 UN의 기존 결의안에 따르면 38선 이북에 해당하는 곳이기 때문에 선거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전쟁으로 상실한 지역에서도 선거는 치르지 못했다. 일~부 점령한 장단군은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서 선거를 치르지 않았고 사람이 살고 있던 옹진군은 주민이 너무 적어서 선거를 진행하지 않았다. 지난 1950년 선거에서 크게 충격 받은 리 박사는 경찰을 동원하여 야당을 철저하게 탄압한다. 고문과 서류 날치기에 살인까지 저지른다. 역시 독재자 클라스 씨발년이네. 안 그래도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와 [[한강 인도교 폭파|한강 다리 폭파]] 때문에 이승만에게 이를 갈고 있었던 서울 시민들은 이것 때문에 자유당을 차버렸지만 지방은 자유당이 싹쓸이했다. 그래도 서울에서 뽑힌 자유당 의원이 5석, 야당이 모두 합쳐서 5석, 무소속이 6석인 걸 보면 자유당을 아예 안 뽑아줬다고 보기는 애매할 듯하다. 무소속의 위세가 점점 약해진다.(70/203) 투표율이 91.1%였고 정원은 203석이고 이번에도 비례대표 없이 지역의원 뿐이다. 1951년에 Dr.Rhee가 만든 자윾당이 2,756,081표(36.8%)로 114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다. 민주국민당은 593,499표(7.9%)로 15석을 얻었고 제2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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