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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정 == {{미뽕}} === 군정 초기 === 서울을 점령한 미군은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을 설치해 3년 간 군정을 실시하였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 [[한국민주당]] 등의 정당들이 창당되어 오늘날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머한민국이 올 거라는 환상이 존재하던 시기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이끈 미국은 민족, 공산 할 것 없이 이육사의 시 광야에 나오는 백마 탄 초인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모두가 신탁통치에 반대해 잘 될 것만 같았다. === 좌우익의 충돌 === 하지만 12월에 [[신탁통치 오보사건]]으로 좌우익이 각각 찬탁과 반탁으로 갈리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1946년]]은 좌우익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시기다. 온갖 백색테러가 만연하고 길 가다가 운 나쁜 놈은 총 맞아 죽을 정도로 아주 피터지게 싸웠다.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때 공산주의자들의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9월 노동자 총파업, [[대구 10.1 사건]]을 통해 판도는 민족주의자들에게 돌아갔다. 집권 중이던 미 육군과 트루먼 행정부는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었으니 여러모로 민족주의 측을 밀어줬다. 이 과정에서 친일파들이 은근슬쩍 정계에 돌아오기도 했다. [[1947년]]이 되자 미국과 민족주의자들에게 존나게 쳐맞았던 공산주의자들은 스카이랜드로 관광을 보내졌거나 북으로 빤쓰런했다. 그리고 이때 이승만이 본격적으로 정부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백성 또는 국민들 사이에서 '새 나라의 국부'로써 주목받기 시작했다. === 정부 수립 === [[1948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보기 힘들어지고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이 더 현실적이게 되어서 국민들의 호응을 잘 받았다.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서 이승만에 반발하는 여론이 [[4.3 사건]], [[여순사태]] 등을 불러일으키는 등 충돌도 잦았다. 한 술 더 떠서 [[김구]]의 총선 불참으로 인해 총선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이겼고 여기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헌법 제정,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을 뽑아줬다. 이때는 간접 선거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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