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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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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개요 ===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된 [[군장국가]]로서, [[동국통감]]에 따르면, B.C 2333에 건국되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 단군왕검은 한 사람이 아닌 직책을 의미하는데,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며, [[제정일치사회]]임을 보여준다. 요동성 지방을 중심으로 성장하였으며, 비파형 동검, 북방식 고인돌 미송리식 토기, 거친무늬 거울 중 2개 이상이 출토된 지역을 고조선의 세력범위로 보고 있다. 단군 신화를 통해 고조선은 제정일치사회이자 농경 사회였으며, 홍익인간 사상을 국가 이념으로 삼았고, 사유 재산을 통한 계급 형성으로 새로운 사회 질서를 수립하였으며 환웅 부족과 곰 부족의 연합을 통해 [[토테미즘]]을 기반으로 한 선민 사상으로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반고의 "한서-지리지"에는 고조선의 8조법 중 3개 조항만이 남아 전달되고 있는데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 *상해를 입한 자 곡식으로 배상 *절도한 자는 노비 라는 조항을 통해, 노동력을 중시하는 농경 사회이자,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계급사회임을 알 수 있다. === 단군조선설 VS 기자조선설 ===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도 기자조선을 인정하고 있으며, 단지 중국과 일본의 주장과는 다르게 기자가 고조선의 영토에 와서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라, 기자가 왔을 때도 이미 단군조선이 있었다고 본다. 기자조선설은 중국 주나라 무왕 때 사람이였던 기자가 기자조선을 건국하였다는 것인데 소중화사상을 통해 민족문화의 자주심을 확립하려고 했던 사림세력이 주장하였다. === 연표 === BC. 7세기 경 [[관중]]이 [[제 환공]]에게 '발조선에게는 무늬있는 가죽을 바치게 하면 됩니다'라고 증언. 사실상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BC. 4세기 경 국가 체제의 완성을 통해 [[연나라]]와 대립할 만한 수준까지 오게 됨. 조선후 칭왕 B.C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입으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성에서 대동강으로 이동 B.C 3세기 고조선의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들이 등장하고 일시적인 왕위 세습이 일어난다. 상.경.대부.대신.장군.박사와 같은 관직명이 존재 준왕 집권기는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중국 혼란기였는데, 이때 연나라 장수 위만이 1천여명의 식솔을 대리고 고조선에 망명을 오게 된다. 이들로부터 철기 문화를 수용하고자 준왕이 위만에게 '박사' 관직을 제수하고 서쪽 변경 수비대장을 맡게 하였는데 위만 세력이 성장하여 준왕을 축출하고 [[위만 조선]]을 건국(B.C 194) 하였다. 준왕은 남하하여 [[마한]]을 건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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