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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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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진지}} 1934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어린 시절 일본군에 징용되어 끌려간 죽은 오빠를 그리워 하는것을 보고 남장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1967년 3번째로 출마한 [[대한민국 제7대 국회의원 선거|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벌인 끝에 낙선했는데, 이때 김옥선 측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문제를 제기했고, 재검표 끝에 국회의원 직을 되찾는데 성공한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비판하며 원조각하를 '딕데이터 박' 즉 독재자 박 으로 불러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75년 국회의원 임기 도중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반도 공산화 규탄 데모를 관제데모라고 비판 했다가 공화당, 유정회 의원들에 의해 제명당할 위기해 처했는데, 이때 [[신민당]] 당수 였던 [[김영삼|땡삼]]이 개무시를 하자 결국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정치규제를 당했고, 1984년 정치규제가 풀리자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가, 이듬해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국회부의장 선출건을 가지고 신민당 주류였던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와 마찰이 생겨 비주류로 밀려났고, 88년 13대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로 나왔으나 결국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무공약이 공약'''이라는 파격적인 공약으로 선거에 출마하지만, [[남장|분명히 이름은 여자 이름인데 외모는 남자인데다 목소리도 남자처럼 굵게 들려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혼란을 느낀]] 유권자들의 문의가 빗발쳤고, 결국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한다. 이후 서울시장선거와 15, 16대 총선에도 출마하지만 번번히 낙선을 거듭한다. 정계은퇴 이후에는 [[닭사모]]로 전직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다. 국회의원 시절 박정희를 비난했으면서 그 딸인 닭그네를 빨아주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한 장면이라고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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