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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논란== 기자가 등장한 역사서중 가장 오래된 것은 '<[[상서]]>'에서 였는데, 여기서는 주무왕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조선으로 튀었는데, 그래도 주무왕이 이용은 해먹어야 겠어서 기자를 봉했다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그리고 '<[[사기]]>'에서는 주무왕이 직접 조선으로 보내서 기자가 나라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로 등장한다. 기자가 조선에서 무슨일을 할 생각이었는지로 두가지의 이야기가 엇갈린다. 전근대시기, 한국은 이러한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고구려, 신라는 기자를 신으로 숭배하였으며, 고려에서는 [[삼국유사]]가 편찬되기 전까지는 기자가 우리이 시조라고 생각했다. 이후 조선에서 [[사림]], 실학자들과 같은 유림들이 기자를 고조선의 뿌리로 생각했다. 이러한 상서와 사기의 내용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 사학'과 '실증사학'의 대두되면서부터였다. 민족주의 사학에서는 중국인 기자가 한국의 뿌리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실증사학에서는 상기한 사기와 상서의 내용이 엇갈리고 고고학 발굴 결과를 보면 고조선의 초기 영역에 해당하는 요동반도는 기원전 3세기쯤 되야지 중국문화권에 들어오니 마니 하던데, 주나라초기 사람이 한국에 나라를 세웠다면, 요동반도에 서주시대 유물이 나와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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