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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각궁]]의 경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탓에 온도차가 크거나 습기가 찰 경우에는 각 (물소뿔 부분)이 틀어지거나, 어교가 풀어져서 활이 망가지는 일이 잦아 '마누라 윗목에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 재운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관리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적이 화창한 날에만 오냐?'며 조선의 각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위화도회군의 명분중 하나가 될 정도로 심각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이 조총을 사용하기 힘든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조선군의 난기였다. 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장에서는 '정량궁'(혹은 육량궁)이라는 활을 사용했다. 활채를 끈으로 감아 마무리하고 체간 (활의 두께)을 아주 두껍게 설정하였으며 크기를 160cm 이상까지 키운 활로, 여섯냥 (6냥을 기준으로 정량이라 부름), 즉 정량의 화살을 쏜다하여 [[정량궁]]이라 하였다. 또한 조선에는 살지도 않는 물소뿔이 주재료로서 생산단가와 자재 수급이 대단히 어려웠다. 몽골활의 경우에는 본디 유목민족이기에 그들이 기르는 아이벡스의 뿔을 쓰면 되지만 조선은 저 멀리 동남아, 유구 (오키니와)까지가서 수입을 해야했다. [[분류: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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