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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제스의 실패 원인 == 흔히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이 부패해서 모택동에게 멸망 당했다는 의견이 강하지만 반만 맞는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통점은 극도로 부패한다는 것이다. 이걸 장제스의 실정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기술적, 현실적 한계다. 국민당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고, 군기가 확실히 든 모택동의 중공군이 이를 철저히 이용해 농민들을 공산당 편으로 끌어들였던 것도 사실이다.(농민도 끌어들였지만 좆소군벌과 중소규모 유격대를 짭짤하게 흡수하셨다.) 사실 장제스가 [[섬서성]] 본진의 중공군을 독일 군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서 거의 섬멸 직전 단계에 돌입했는데 장쉐량 정신병자 새끼가 갑자기 지랄 삽질을 치는 바람에 쫄딱 망한 경향도 매우 크다. 이후 대만으로 쫓겨나서 개빡친 장제스는 장쉐량을 종신 동안 감옥에 박아뒀다. 사형 안 때린 게 다행일 정도.,. 그런데 100살 넘게 산 장쉐량은 결국 풀려나서 미국에서 뒤진다. 하지만 장제스의 패망의 원인은 십중팔구 중일전쟁 기간에 대부분의 국민당 군대가 일제에 의해 섬멸 당했기 때문이다. 가끔 중국 인터넷에서 보면 공산당의 은인은 일본이라는 댓글이 심심찮게 달리는데 10초 만에 삭제 당한다. ^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장제스가 2차대전 끝나고 벌인 삽질이다. 당시 모택동은 소련, 북조선과 연계하여 화북(중공)과 만주 지역(소련, 북괴)에 거대한 포위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장제스가 마지막 주력군을 쏟아부어서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부관들이 대부분 반대했지만 장제스는 지금 아직 영미의 지원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저들을 토벌하지 않으면 장차 본진이 털리게 될 거라는 조급함에 강행해버렸다. 그 결과 화북 지역에서 장제스의 마지막 주력은 완벽하게 깨지고 말았고, 이로 인해 장제스는 대륙에서 방을 빼게 된 것이다. 만일 이때 장제스가 방어에 주력하면서 영미의 경제 지원을 받아서 중국을 꾸려나갔다면 지금 중국은 남부<ref>그래도 국민당군이 초기에 화북 지역에 있던 중공군은 쉽게 털었기 때문에 이 남부가 리얼 중국의 본진이었던 중국 관내로 대체될 수 있다. 그리고 내몽골 머튽 데므치그돈로브가 장제스와 짝짜꿍해서 내몽골에 있던 소련군과 빨갱이 몽골군을 쫓아내려고 했기에 운이 좋으면 내몽골(차하르성, 수원성, 영하성, 러허성)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ref>의 선진 자유중국과 북부<ref>북부가 아니라 화북을 국민당에게 털려서 만주로 쫓겨났을 수도 있다.</ref>의 거지 공산 중국으로 나뉘어있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장제스가 너무 위험한 도박을 벌였다. 장제스가 도박을 둔 건 북벌, 반장전쟁, 중일전쟁 내내 그랬던 것이지만 국공내전에서 그 운이 다했다. 중공군은 참전도 못 할 테니까 한국은 분단도 안 됐고.... ㄴ 대신 북부의 거지 공산 중국과 같이 반도의 거지 대한민국이었을 확률이 높다. ㄴ 오히려 냉전 시대 이념 대결로 미국만이 아니라 자유중국에게서도 떡고물 좀 받아먹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바로 옆에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이 수십 년 일찍 열린 셈이니 그 효과도 상당할 테고. ㄴ 오히려 냉전 체제가 남부의 선진 자유 중화민국, 대한민국, 일본, 미국 VS 북부의 거지 공산 중화인민공화국, 몽골, 소련이 됐을 수도 있다. 미국 성님도 생각보다 존나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미국은 공산당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킴으로써 국민당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1945년 4월 15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외무 장관과의 회담에서 "소련은 중국 공산당을 원조할 생각이 없다. 장개석에 의한 중국 통일을 지지하며 중국 문제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한다."라는 몰로토프의 약속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ref>이게 패트릭 헐리의 작품인데... 헐리 빼고는 아무도(미국도 그렇고 중화민국도 그렇고) 소련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소련은 통수를 쳤고. 헐리가 중공을 경계하던 몇 안 되는 미국 외교관인 건 사실인데 소련을 믿은 건 실책이었다.</ref> 중국 공산당이 소련과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해버린 것이다. 물론 소련 새끼가 국민당에게 엄청난 트롤링을 벌였다. 특히 만주의 항구를 점령하거나 중공군이 점령하도록 지원했다. 예시로 뤼순 항구가 있는데 이곳을 점령해서 국민당군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국민당군이 심양-차오양-후루다오-산해관 루트로 탈출할 때도 방해해서 차오양 일대에 있었던 중공군에게 튀다가 여러 차례 털리게 만들었다. 동시에 국민당의 국제적 입지를 제고해 주었다. 미국은 국민당이 소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양측의 동맹 조약을 주선했다. 그 결과물이 1945년 8월 14일에 맺은 중·소 우호동맹조약의 체결이다. 실제로도 소련이 역시 약간 도와주기는 했다. 박쥐 같은 소련 새끼 ㅍㅌㅊ? 자본주의 진영의 최강국 미국에 이어 사회주의 진영의 최강국 소련마저 국민당의 우군이 되었으니까 국민당은 대외적으론 완벽히 우세했다. 물론 미국의 힘이었지만. 심지어 미국은 국민당의 군사 활동도 지원했다. 미국이 1937~1948년에 국민당에 제공한 금액은 46억 110만 달러다. 이 중에서 무상공여 및 차관인 35억 2300만 달러의 60%는 국공내전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1945년 8월 이후에 제공되었다. 당연히 이 돈은 공산당과의 전쟁에 투입되었다. 무기도 눈치 보면서 꽤 주었다. 국민당 군대의 253개 사단 중에서 39개 사단은 미국이 제공한 최신 무기와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 덕분에 국민당은 공산당 거지들보다 화력이 우세했다. 보급도 도와주었다. 미국의 중국 방면 사령관인 웨드마이어 장군이 이끄는 육·해·공군은 국민당 군대를 중국대륙 이곳저곳으로 수송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미군은 국공내전에서 '운전수' 노릇까지 한 것이다. 당연히 겁나 강하신 미제 성님들이 운전수 짓거리만 하진 않았고 전투병도 파견했다. 대략 10만 명의 미군이 황하 지역에 투입되어 국민당을 지원했다. 또 국민당이 불리한 지역에는 미 해병대가 급파되어 공산당을 몰래 공격하거나 길막질을 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라 국민당이 마오쩌둥의 전통적 전략과 다른 신박한 전략에 의해 코너에 몰리자 중요 지역에 5만 명의 미 해병대가 급파되어 실드 or 길막질을 시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국민당이 불리할 때는 전쟁판을 잠시 중단시켰다. 공산당이 유리할 때는 갑자기 국·공 양당의 대화를 하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때린다면서 국민당에게 쉴 틈을 줌. 근데 이런 노오력에도 쩌둥식 전략에 국민당이 존나게 깨지자 패배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미국 군사가들이 인정하고 1945년 12월 12일 미국의 조지 마셜 전 육군참모총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결국 1946년 1월 9일 양당 간에 휴전을 성립시켰다. 솔까 높으신 군사 지도자 나으리들이 맨날 쭝꿔 꽁싼국을 좆밥으로 본 게 허접한 결과를 낸 책임으로 지목되긴 하지만 후에도 이상하게 미국 성님이 쭝꿔 새끼들만 상대하면 결과가 그리 좋진 않았는데 쭝꿔가 개겨도 미국 성님이 여간해서는 경제적으로만 때리고 구경만 하는 게 이런 경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아님 어떤 놈들 주장처럼 쭝꿔 새끼들이 몰래 핵전력을 존나게 키우고 있든지. 800~3,000발로 생각하는 예측들이 있다. 실제로 쭝꿔 놈들이 원래 군사력을 발표하지 않고 숨기고 있었는데 확인하기 쉬운 해군과 나중에 지들이 발표할 때 보니까 보수적인 예측보다 꽤 급진적인 예측들이 맞았다. ㄴ 미국이 본격적으로 지원한 건 창춘에서 좆제스가 깨진 이후다. 그러니까 전세는 이미 절반은 기울었을 때부터 지원 시작했다는 거. 그리고 내전 초기만 해도 빨갱이들은 하얼빈에서 뒤질 준비하고 있었는데 [[조지 마셜|그거 막은 건 누구?]] 미국의 주장은 한결같이 국공연합을 통한 통일 정부 수립이었다.(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극동 전략은 실책 투성이었다. 마셜 새끼도 유럽에서나 잘했지 극동에서는 병신 짓거리를 한 게 더 많다. 물론 마셜의 능력은 ㅆㅅㅌㅊ였지만 루즈벨트와 트루먼이 세워놓은 극동 전략 자체가 마셜이 어찌해볼 수 없는 폐급이라서 문제였다. 간단히 요약하면 장제스가 좆 만한 섬으로 쫓겨난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다. 빼먹은 거 있으면 추가 좀 1. 중일전쟁: 공산당 부활 + 직계군 소모 + 경제씹창. 게다가 국민당은 1947년에 전쟁이 끝날거라 생각하고 거기에 맞춰서 계획짜고 준비다했는데 좆본이 [[리틀보이|핵]][[팻맨|쳐맞고]] 너무 일찍 항복해서 다망했다. 2. 여전히 병신이었던 중화민국 체제: 비록 장제스가 중일전쟁을 통해 1인자 위치를 확고히한건 맞지만 여전히 중화민국은 잡다한 새끼들의 연합체제였다. 그랬기 때문에 장제스는 동업자들을 컨트롤하지 못했는데, 쑹씨새끼들을 위시로한 부르주아들은 중일전쟁 직후부터 지들 밥그릇 챙기겠다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다녔으며 당내 반장파들은 쑹칭링 썅년을 따라 공산당이랑 짝짜꿍했다. 군벌 새끼들 역시 대부분은 장제스 직계군이 깨지자 너도나도 공산당으로 갈아탔다. 3. 만주공세: 꼬붕들이 장성에서 막자고 했다. 그걸 쌩깐건 장제스다. 화북도 제대로 통제 못하던 상황이었는데 만주 먹자는건 누가 봐도 개무리수였다. 장개석이 조금이라도 참고 이 말들었으면.... 4. [[조지 마셜]]의 트롤링과 미국눈치보고<ref>근데 땅끄랑 전투기랑 차굴릴 [[석유]]를 천조국한테 수급받고 있어서 눈치를 보고싶어도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시기에 [[허난성]], [[후베이성]], [[사천성]]에 있던 유전을 발굴했다면 참좋았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ref> HP 10%밖에 안남은 공산당을 못조져 기회를 완전히 걷어참 : 반면 기회를 노릴 줄 아는 상남자 갓-텔똥은 강남먹지말라는 천조국과 소련의 요구를 정면으로 씹었다. 5. 쉬저우 사수: 만주에서 깨진 후에 꼬붕들이 장강에서 방어선 만들자했는데 쌩까고 회수방면 군대 안빼다가 날려먹음 6. 끝까지 광시군벌이랑 반목함: 하야해놓고 리쭝런한테 지원 안한거랑 창춘회전 직후 바이충시가 군대 모집하러간다는거 허용안함<ref>이건 광시군벌들이 수시로 반란일으키던 폭도라서 그런거긴한데 ㅅㅂ(만주공세때 고향가겠다고 철수한건 보너스) 빨갱이보단 광시군바리들이 백배 나았다.</ref> 7. 심리전 실패 : 애초에 국공내전당시 장제스 직계군 제외한 국민당 주력군 상당수가 군벌세력권이던 [[운남성]], [[사천성]], [[귀주성]]등서남지방에서 끌려온 애들이라 국공내전에 소극적이었다<ref>반면 공산군이 활동하면서 깽판친 전적이 있던 화중, 화북, 화남지역출신 장병들은 국공내전에 적극적이었다.</ref>. 근데 그럴 공산당이 잘 찔러서 선동하고 지들동네 대장님들이 장제스 직계군이 깨지면서 투항하니까 개나소나 다 탈주했다. 8. 반대세력의 과도한 숙청 : 물론 최종적으로 보면 못된똥이 장제스보다 비교도 안되게 심했지만 국공내전 기간에는 오히려 장제스가 상당히 심했다. 중일전쟁 끝나자마자 장제스한테 안 개기고 일본이랑 잘만 싸우던 윈난 군벌을 갑자기 조지는가 하면 내부의 장제스 반대자를 국공내전 기간때도 숙청함으로써 국민당 지배지역에서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물론 이때는 걔네들이 중공의 진실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군벌들이랑 빨갱이(중공이나 그 첩자애들 말고 그냥 좌파애들) 숙청하는 건 좋은데 못된똥처럼 전쟁 끝나고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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