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공주시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연혁 == === 고대 === 한강이남에서 최초로 발굴조사된 구석기 유적이 장기면 석장리에 있었지만 장기면이 세종시로 떨어져 나갔다... 이외에도 반포면 마암리에서도 구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고인돌이 탄천면 남산리, 반포면 국고리, 장기면 은룡리등 금강변에서 조금씩 발견된 것을 보아 금강변에서 서서히 부락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선돌이 장기면 평기리, 반포면 상신리와 원봉리, 유구읍 입석리 등에 분포해 있다. 탄천면 송학리, 남산리에선 옹관묘가 발견되었고 장기면 봉안리에선 청동과, 청동검이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부터 웅천군(熊川郡)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개쳐발린 [[백제]]가 [[문주왕]]과 함께 웅천에 수도를 두면서 역사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마냥 공주에 잠깐 머물러서 그랬는가, 영토도 크게 줄고 왕권도 약해져서 힘있는 자들의 끊임없는 반란에, 백성들도 전란과 내란으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동성왕과 뒤를 이은 무령왕 때 잠시 영토를 회복하고 여러면에서 부흥을 도모했지만, [[성왕|그 아드님]]께서 곰나룬지 고마나룬지 산밖에 없는 이지역은 답이없다! 하고 잽싸게 [[부여군|사비성]]으로 런하셨다. 백제말기 [[당나라]], [[신라]]가 쳐들어오자 [[의자왕]]이 사비성을 버리고 여기서 무슨 짓이든 해보겠다고 버텼지만 [[예식진]]이라는 개 씨발새끼가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린덕분에 백제는 멸망했고 당나라는 웅진성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설치했다. 하지만 [[나당전쟁]]에서 당나라가 [[신라]]에게 좆발리자 백제고지는 모두 신라의 땅이 되었고 신라는 잠시 백제고지에 대한 행정권 확보를 위해 임시적으로 설치한 소부리주, 탕정주를 폐지하고 686년 [[웅천주]](熊川州)를 설치, 도독이 파견되었다. 757년 웅천주는 웅주로 개명되었고 [[논산시#노성면|니산현(尼山縣)]], [[공주시#신풍면|청음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 고려 === 822년 [[김헌창의 난]]이 벌어지면서 개판이 되었다가 940년 공주로 승격되었다. 983년 최승로의 건의로 전국 12개주에 목이 파견되면서 공주목이 파견되었다. 995년 12목이 폐지되고 절도사가 파견되면서 안절군(安節軍)절도사가 파견되었고 10도가 설치됨에 따라 [[홍성군|운주]]와 함께 하남도에 속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