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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국제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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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원시대]] === 이런 동아시아 국제정치 체제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10세기]]로 당나라 멸망 이후 5대 10국, 요나라, 송나라의 등장이다. 요나라는 발해를 멸망시키고 만주 일대에서 중국식 황제국가를 선포한 거란족의 국가이고 송나라는 한족의 국가였는데, 조공을 바쳐야 할 나라가 요와 송으로 나뉘자 고려와 일본은 요 따위의 오랑캐와 교역하지 않겠다며 송과 손을 잡아버린다. 고려의 경우 요나라와 접경하고 있기 때문에 요나라를 쌩깐다면 아주 위험하지만, 고려 내에서 반거란 감정이 매우 심했기 때문에 요와 손잡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했다. 결국 반거란 감정이 승리해 송과 조공책봉을 맺었다. 일본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요의 위협도 거의 없으며 경제적으로 부강한 송나라를 선택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한편 송나라는 요나라에게 털려 전연의 맹약을 맺고 요나라에 세폐를 바쳤으며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라는 쪼그만한 나라에게 허구한 날 털리면서 서하에게도 돈을 바치게 된다. 전반적으로 고려-송-일본 / 요나라 / 서하의 구도로 볼 수 있으며 송나라는 요나라와 서하에게 돈을 주면서 평화를 유지한 꼴이었다. 이게 바로 [[11세기]]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이다. 하지만 [[12세기]]에 들어서며 또다시 정세가 달라지는데 요나라가 신흥 강자인 여진족의 금나라에 털리고 서역(이슬람 세계)으로 빤쓰런했고 금나라가 송의 수도 카이펑을 점령하자 더 이상 주변국이 금나라를 쌩까기가 힘들었다. 결국 고려는 남송과의 관계를 끊고 금나라에게 조공을 바치게 된다. 이런 관계는 [[13세기]]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이 나타나며 싸그리 뒤집히게 되었다. 오랜 기간의 내전으로 단련된 유목민족 전사들인 몽골인들은 순식간에 서하, 금, 남송, 서요(요나라), 파간 왕조, 티베트, 고려, 호라즘, 아바스, 키예프 공국 등을 갈아버렸으며 1271년 쿠빌라이 칸이 중국식 황제국인 원나라를 선포하면서 조공 책봉 관계가 아닌 철저한 복속 체제로 가게 된다. 몽골은 자신들이 가장 강력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외교로 해결하기보다는 힘으로 다 밀어서 피지배민족들을 복속시키고 차별하며 잠재적 불안 요소를 만들었고 결국 100년도 못 가고 주원장의 홍건적이 난을 일으키며 중국의 통일왕조는 명나라로 교체되었다. 간혹 가다 동아시아의 특수한 외교관계 드립을 치며 '원 간섭기'라며 고려가 독립국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머저리들도 있는데, 이는 철저히 한국 역사학계에서만 나오는 주장이며 총독인 다루가치가 파견된 이상부터 걍 몽제강점기나 다름없었다. 문화적으로 자주적이라서 독립국이었다고 주장하기에는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 문화 색채는 강했다. 왕실은 쿠빌라이 칸에게 잘 보여서 보전된 것 뿐이며 걍 왕실만 보전된 원 지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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