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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칸트)==== [[관념론]](idealism)은 유물론에 대립하며, 관념적(이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앞선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 신본주의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우주의 인식의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이 인식함으로 우주가 존재한다는 인본주의적인 입장이다. 관념론은 [[데카르트]]가 초석을 깔았고, [[칸트]]가 발전시켰으며, [[헤겔]]이 완성했다. 프랑스의 수학자 겸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모든 가설에 의심을 품고, 학문을 하려면 확실한 가정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명제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를 제 1명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볼 때는 맞아 보이는 이 명제 역시 증명되지도,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은 불확실한 명제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의 의미는 '나는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즉, '나는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중세의 신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이 혁명적인 사상으로 서양은 물질주의로 빠져들었고, 실존주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데카르트의 제 1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또는 '''나는 신의 인식 안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이다. 만약 생각함으로 존재한다면 뇌사 상태에 빠져서 생각할 수 없는 환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돌 덩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고, 인공지능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존재할까? 먼저,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사고와 관계 없이 신이 인식하기 때문에 존재하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100년을 산다 한들 우주 나이 200억년에 비하면 2천만 분에 1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500km라고 가정했을 때 2천만분에 1은 겨우 2.5cm에 해당한다. 우주 나이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카메라 플레쉬 터지는 것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카메라 플레쉬 불빛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이 있으며,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200억년 가야 하는 200억 광년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1,000억×1,000억=1022개의 별이 있는 것인데 이 우주의 크기와 별들의 수에 비하면 지구는 드넓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보다 작은 존재이다. 지구상의 모래 밀도와 면적을 계산하면 모래 숫자를 셀 수 있는데,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와 같은 1022개이다. 신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많이 주겠다 하는 말을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고 하셔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가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도 하늘의 별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다고 수천 년 전부터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처럼 작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신이 우주의 크기와 시간을 광대하게 만드신 이유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이사야 40/12~15 ''누가 오목한 손바닥으로 물들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되로 땅의 먼지를 담아 보았으며 큰 저울로 산들을, 작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느냐? 누가 주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어 그분을 가르쳤느냐? 그분께서 누구와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분께 교훈을 주었으며 의의 길로 그분을 가르쳤으며 그분께 지식을 가르치고 명철(明哲)의 길을 보여 주었느냐? 보라, 민족들은 물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그들은 저울의 작은 먼지와 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분께서는 매우 작은 것을 드시듯 섬들을 드시나니''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 인공 장기와 인공 근육과 인공 피부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겠다. 나이가 들면 병들거나 노쇠하거나 고장난 인체 부위를 교체할 것이다. 돈이 많아 뇌 빼고 모든 조직을 교체해도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뇌를 교체하면 나는 없어진다. 나란 존재는 '과거 기억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신의 자아는 나의 '뇌'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뇌에서 신경단위인 뉴우론이 전기신호를 주고 받으며 지각, 연산, 판단, 기억, 명령 등을 한다. 그렇다면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가 나인데 전기신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결정적으로 이 우주는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 나 부터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고, 내가 있기 이전에도 우주는 존재했다. 나라는 존재는 잠깐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실 이런 유아론(有我論)적인 생각은 어릴적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내가 있음으로 이 세상이 존재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과 자아를 갖고 있지 않고 나를 위해 일시적으로 존재하며, 내가 볼 때만 세상이 움직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세상은 정지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도 생각과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은 나와 상관 없이 잘도 돌아가고, 나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미약한 존재란 것을 깨닫고 유아론적인 생각을 버렸다. (인식론, 가상세계)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샤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유아론적인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여 이 세상에 오직 나만 존재하고, 나만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유아론적인 사상이 있다. 관념론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실천이성과 순수이성으로 구분했다. 실천이성은 도덕적 실천의지로 논리적이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선천적인 의지이다. (선한 마음, 도덕, 양심과 같은 것으로 영이 가진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신을 동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논리적, 합리적, 보편적인 판단능력이다. 순수이성은 감성(직관), 오성(悟性, 논리적 사유능력), 이성(理性, 이치에 따라 분별함) 등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수집, 기억, 추론, 판단 등의 혼적인 능력이다.) 칸트는 순수이성으로 형이하학의 학문이나 과학에 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순수이성으로는 형이상학의 물자체(物自體, 원형,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실천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즉,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인간 내면의 양심을 통해 의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칸트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유함으로 우주만물이 존재한다는 유아론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신 중심의 형이상학을 인간 중심의 형이상학으로 바꾸는데 일조하였다. 이 후 칸트는 철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내막을 모르는 기독교한국루터회는 그를 위인으로 선정했다. 칸트의 사상을 이어 받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관념론을 완성시켰다. 데카르트와 칸트가 인간이 신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면, 헤겔은 인간을 신으로 등극시켰다. 헤겔은 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정신은 합리적인 오성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주관적인 의지라고 했다. 그러나 신이 가진 의지적인 속성은 온전한 상태에서 뜻을 이루는 것이지, 부족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자인 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자의 본질을 자유로 보고, 인류 역사는 신의 자유가 전개되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신의 자유가 절대군주와 귀족을 거쳐 모든 사람에게 옮겨져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실현되는 시대가 오며, 바로 현대가 자유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했다. 이는 신이 가진 자유와 인간이 가진 자유를 혼돈한데서 온 현상이다. 신의 자유는 창조와 질서를 이루지만, 인간의 방종적 자유는 파괴와 혼돈을 일으킬 뿐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지를 버리고, 신의 질서에 합류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수가 말씀하신 진리를 통한 자유는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인간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헤겔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정(正), 반(反), 합(合)으로 설명한 변증법을 제안했다. 형이상학적인 구상 없이 물질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개혁해 진화·발전할 수 있다는 변증법은 유물론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다원의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등 인류를 배교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물질은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서 파괴와 무질서로 치달을 뿐 스스로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질서는 규칙성과 법칙을 따르는 상태이고, 무질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혼란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새로 지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질서해져 낡아지지, 저절로 새 건물이 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는 일렬종대로 줄을 세운 사람들은 그냥 놔두면 점점 무질서 해지지, 무질서한 군중이 우연히 군대 사열하듯이 질서 있게 서 있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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