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월남사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제4차 북속시기 == 마지막 북속시기. 중화왕조들이 마지막으로 베트남을 따먹은 시대로 이 시기 이후 짱깨들은 영원히 베트남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영락제는 제1 ~ 3차 북속시기에 시행됐던 중화왕조들의 식민통치제도를 이어나갔다. 행정제도를 대대적으로 갈아치운 후 베트남 고유의 문화를 탄압하고 중국의 문화를 강요했다. 그러나 명나라의 행정력은 예상 외로 졸라 후달렸다. 진가를 재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명나라에게 베트남인은 빡칠 수 밖에 없었고 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명나라를 몰아내려고 진가 황족들이 다시 기의를 일으키다 명나라에게 진압되기도 했다. 하지만 진가 황족들의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지방 토호 여리와 그의 일가친척 및 측근들이 남산에서 3차례의 기의를 일으켜 명나라 군대와 대항했다. 처음에는 병력의 질적 차이로 항복과 화친을 거듭했지만 남산군대의 총지휘관인 평정왕 여리의 지도력, 그의 측근인 완채의 신묘한 전술, 남산군대의 악착같은 끈기와 명나라 군대의 내부사정으로 졸동과 축동에서 명나라 군대는 완패하고 많은 장성들과 병졸의 목이 떨어져 시체의 산을 이뤘다고 베트남인들이 기록했지만 사실은 명측에서 걍 2군 유망주 하나 보냈는데 발린 거라(당시에도 애송이 보내서 걱정된다고 한 새끼도 있었다.) 그새끼가 삽질해서 뒤지고 난 뒤에 남은 군대는 걍 철군했다. 700만 명군 베트남 침공 썰이 이때 나왔다. 지릉관 전투를 끝으로 명나라는 남산군대와 화약을 맺고 다시는 침공하지 않겠다고 멩세하며 군대를 물린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