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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와 박흥주== ===박선호=== 김재규와는 스승과 제자 사이이다. 해병대 대령으로 전역했던 박선호는 상명하복 스타일의 군대와 전혀 다른 사회의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김재규의 도움을 받아서 중앙정보부에 들어온다. 평소 김재규가 "거만하게 행동치 말라.", "책을 많이 읽어라." 등 따뜻한 조언을 해주었기에 김재규에게 큰 존경심을 가졌다. 하지만 의전 과장이란 자리가 박정희의 술 시중을 드는 여자나 섭외하는 소위 채홍사 같은 자리라는 걸 겪게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사퇴를 고민하였지만 김재규가 "자네가 없으면 궁정동 일을 어떻게 하겠나."라고 간곡히 만류하여 재규어 때문에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최후 진술에서 박선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용문|김재규 부장님을 모셨다는 것을 첫째 영광으로 생각하고, 저로 하여금 항상 인간으로 일깨워 주시고, 국가의 앞날을 버러지의 눈이 아니라 창공을 나는 새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똑바른 눈이 될 수 있도록 길러 주신 데 항상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또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는 그 길밖에 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박흥주=== 당시 국내 최고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였던 서울고를 최고 수준의 성적으로 졸업하였으나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학비를 댈 형편이 안 되어서 서울대가 아닌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였다. 육사에서도 공부벌레란 말을 들을 정도로 학문에 열중하여 18기 생도 중 최우수로 졸업하며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박흥주가 전속 부관이 되었을 때 사단장이 재규어였는데 이때부터 박흥주는 재규어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된다. 굉장히 유능했기 때문에 39세에 대령을 다는 초고속 승진을 했으며 엄청난 권력을 가진 중앙정보부장의 수행 비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동구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사는 등 군인으로서 흠잡을 곳이 없는 청렴함과 인간성을 보였다. 10.26 이후 사형을 선고 받았을 때는 김재규를 원망키는커녕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士爲知己者死)는 글을 적었다고 한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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