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프리메이슨/사상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본질(Essense)은 현상세계의 원형과 원인이 되고, 그에 반대 개념인 현재적 존재를 실존(Existence)이라고 한다. 하이데거나 야스퍼스가 선구자이며, 특히 인간의 존재를 실존이라 하며 이에 대해 탐구했다. 야스퍼스는 실존적 자아를 사유와 행동의 근원이며, 초월자나 다른 실존과 관련 속에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야스퍼스]]와 [[키에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철학자인데 반해 [[니체]], [[하이데거]], [[샤르트르]], [[까뮈]]는 무신론적 실존철학자이다. 샤르트르는 행동하는 인간을 주장했고, 실존주의를 휴머니즘으로 보았다. 샤르트르는 실존이 오히려 본질에 앞선다고 주장하며 실존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샤르트르는 인간은 무(無)에서 존재하는 실존이기 때문에 스스로 행동에 의해서 자신을 만들어 나가며, 자신이 선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샤르트르의 휴머니즘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자기 수중에 장악하고 있고, 사회를 변혁할 수 있으며, 자신의 선택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며, 병이나 사고 등으로 죽기 쉽고, 개인주의적인 사회는 파멸로 치닫고 있고,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에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이다. 결국 서양철학은 크게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갈래 입장의 대립의 역사이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border="1" |- | 신본주의 || 절대적 진리 || 형이상학 || 본질 || 원인 || 원형 || 영 || 실제 || 이상 || 실체 |- | 인본주의 || 상대적 진리 || 형이하학 || 실존 || 결과 || 모형 || 육 || 가상 || 불완전 || 현상 |- |} 한 부류는 신을 중심하고 의지하며,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고, 본질에 관심을 두며, 원인적 세계를 고찰하고, 영적인 생활을 하며, 실제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하고, 영원토록 존재하는 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입장이다. 다른 부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개개인의 상대적 진리를 주장하며, 실존적 세계와 결과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고, 모형적 세계를 좋아하며, 육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살고, 가상적 세계에서 허무함을 느끼며, 불완전한 세계에서 심한 혼란을 겪다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적 삶을 살다 가자는 입장이다. 이 둘 간의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누가 옳은지는 사(死) 후, 또는 마지막 때 판가름이 날 것이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border;1px" ! !! [[형이상학]] !! [[형이하학]] !! 인식의 주체 |- | 그리스 철학([[플라톤]]) || O || O || 선의 이데아 |- | 관념론([[칸트]]) || O || X || 나 |- | 실존주의([[니체]]), 불교([[석가모니]]) || X || X || 나 |- | 유물론([[마르크스]]) || X || O || 나 |- | 기독교([[야훼]]) || ○ || △ || 신 |- |} 좀 더 자세히 분석하면 위와 같다. 서양철학의 큰 줄기인 4가지 유형과 기독교는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우주에 대한 인식의 주체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갖는다. 하나씩 살펴 보겠다. ====그리스 철학(플라톤)==== 서양철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플라톤]]은 이 세계는 이상적 세계의 그림자라고 했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세계인 이데아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서로 다른 고양이를 고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고양이가 이상적인 고양이를 불완전하게 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4인설을 통해 형이상학을 구체화 했다. 히브리서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사도 [[파울루스]]는 유대 제사 때 쓰는 기물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늘에 원형이나 설계도가 있고, 이 세상의 것은 하늘 세계를 본 따서 만든 모형적 세계요, 가상(그림자)적 세계이다. 지상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원이나 삼각형을 그리려고 해도 오차 때문에 완변한 도형을 그릴 수 없다. ====관념론(칸트)==== [[관념론]](idealism)은 유물론에 대립하며, 관념적(이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앞선다는 입장이다. 언뜻 보기에 신본주의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로 우주의 인식의 주체가 인간이고, 인간이 인식함으로 우주가 존재한다는 인본주의적인 입장이다. 관념론은 [[데카르트]]가 초석을 깔았고, [[칸트]]가 발전시켰으며, [[헤겔]]이 완성했다. 프랑스의 수학자 겸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모든 가설에 의심을 품고, 학문을 하려면 확실한 가정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명제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를 제 1명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볼 때는 맞아 보이는 이 명제 역시 증명되지도,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은 불확실한 명제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의 의미는 '나는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즉, '나는 나로 인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중세의 신본주의를 무너뜨리는 이 혁명적인 사상으로 서양은 물질주의로 빠져들었고, 실존주의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필자는 데카르트의 제 1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또는 '''나는 신의 인식 안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한다.''' 이다. 만약 생각함으로 존재한다면 뇌사 상태에 빠져서 생각할 수 없는 환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돌 덩이는 생각할 수 없으므로 존재하지 않고, 인공지능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존재할까? 먼저, 존재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사고와 관계 없이 신이 인식하기 때문에 존재하며,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100년을 산다 한들 우주 나이 200억년에 비하면 2천만 분에 1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를 500km라고 가정했을 때 2천만분에 1은 겨우 2.5cm에 해당한다. 우주 나이에 비하면 우리 인생은 카메라 플레쉬 터지는 것만큼이나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카메라 플레쉬 불빛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계가 있고,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별이 있으며, 우주의 크기는 빛의 속도로 200억년 가야 하는 200억 광년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1,000억×1,000억=1022개의 별이 있는 것인데 이 우주의 크기와 별들의 수에 비하면 지구는 드넓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보다 작은 존재이다. 지구상의 모래 밀도와 면적을 계산하면 모래 숫자를 셀 수 있는데,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와 같은 1022개이다. 신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많이 주겠다 하는 말을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게 하겠다고 하셔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가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레미야서에서도 하늘의 별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다고 수천 년 전부터 주장을 하였다. 그런데 지구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처럼 작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모래알에 붙어 있는 미생물이 존재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신이 우주의 크기와 시간을 광대하게 만드신 이유는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이다. 이사야 40/12~15 ''누가 오목한 손바닥으로 물들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되로 땅의 먼지를 담아 보았으며 큰 저울로 산들을, 작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느냐? 누가 주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분의 모사(謀士)가 되어 그분을 가르쳤느냐? 그분께서 누구와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분께 교훈을 주었으며 의의 길로 그분을 가르쳤으며 그분께 지식을 가르치고 명철(明哲)의 길을 보여 주었느냐? 보라, 민족들은 물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그들은 저울의 작은 먼지와 같이 여겨지느니라. 보라, 그분께서는 매우 작은 것을 드시듯 섬들을 드시나니'' 앞으로 과학이 발전해 인공 장기와 인공 근육과 인공 피부가 나왔다고 가정해 보겠다. 나이가 들면 병들거나 노쇠하거나 고장난 인체 부위를 교체할 것이다. 돈이 많아 뇌 빼고 모든 조직을 교체해도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뇌를 교체하면 나는 없어진다. 나란 존재는 '과거 기억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신의 자아는 나의 '뇌'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뇌에서 신경단위인 뉴우론이 전기신호를 주고 받으며 지각, 연산, 판단, 기억, 명령 등을 한다. 그렇다면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신호가 나인데 전기신호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결정적으로 이 우주는 나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 상관 없이 존재한다. 나 부터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고, 내가 있기 이전에도 우주는 존재했다. 나라는 존재는 잠깐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실 이런 유아론(有我論)적인 생각은 어릴적 누구나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초등학교 때 내가 있음으로 이 세상이 존재하고, 다른 사람은 생각과 자아를 갖고 있지 않고 나를 위해 일시적으로 존재하며, 내가 볼 때만 세상이 움직이고 내가 보지 않으면 세상은 정지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다른 사람도 생각과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세상은 나와 상관 없이 잘도 돌아가고, 나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 미약한 존재란 것을 깨닫고 유아론적인 생각을 버렸다. (인식론, 가상세계)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체, 샤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은 초등학생 수준의 유아론적인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여 이 세상에 오직 나만 존재하고, 나만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유아론적인 사상이 있다. 관념론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실천이성과 순수이성으로 구분했다. 실천이성은 도덕적 실천의지로 논리적이지 않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선천적인 의지이다. (선한 마음, 도덕, 양심과 같은 것으로 영이 가진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신을 동경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논리적, 합리적, 보편적인 판단능력이다. 순수이성은 감성(직관), 오성(悟性, 논리적 사유능력), 이성(理性, 이치에 따라 분별함) 등을 가지고 있다. (순수이성은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수집, 기억, 추론, 판단 등의 혼적인 능력이다.) 칸트는 순수이성으로 형이하학의 학문이나 과학에 대해서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순수이성으로는 형이상학의 물자체(物自體, 원형,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실천이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즉, 형이상학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인간 내면의 양심을 통해 의지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칸트 역시 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내가 사유함으로 우주만물이 존재한다는 유아론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칸트는 신 중심의 형이상학을 인간 중심의 형이상학으로 바꾸는데 일조하였다. 이 후 칸트는 철학사에 큰 영향을 끼쳤고, 내막을 모르는 기독교한국루터회는 그를 위인으로 선정했다. 칸트의 사상을 이어 받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관념론을 완성시켰다. 데카르트와 칸트가 인간이 신인 듯한 착각에 빠졌다면, 헤겔은 인간을 신으로 등극시켰다. 헤겔은 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정신은 합리적인 오성이 아니라, 자신을 알아가는 주관적인 의지라고 했다. 그러나 신이 가진 의지적인 속성은 온전한 상태에서 뜻을 이루는 것이지, 부족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역사를 절대자인 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자의 본질을 자유로 보고, 인류 역사는 신의 자유가 전개되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신의 자유가 절대군주와 귀족을 거쳐 모든 사람에게 옮겨져 모든 사람에게 자유가 실현되는 시대가 오며, 바로 현대가 자유의 마지막 단계라고 생각했다. 이는 신이 가진 자유와 인간이 가진 자유를 혼돈한데서 온 현상이다. 신의 자유는 창조와 질서를 이루지만, 인간의 방종적 자유는 파괴와 혼돈을 일으킬 뿐이다. 인간은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지를 버리고, 신의 질서에 합류할 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수가 말씀하신 진리를 통한 자유는 나를 사망으로 이끄는 인간의 본능과 사탄의 주관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헤겔은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을 정(正), 반(反), 합(合)으로 설명한 변증법을 제안했다. 형이상학적인 구상 없이 물질 스스로 자신의 모순을 개혁해 진화·발전할 수 있다는 변증법은 유물론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다원의 진화론이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등 인류를 배교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물질은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서 파괴와 무질서로 치달을 뿐 스스로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질서는 규칙성과 법칙을 따르는 상태이고, 무질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혼란한 상태이다. 예를 들면 새로 지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질서해져 낡아지지, 저절로 새 건물이 될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는 일렬종대로 줄을 세운 사람들은 그냥 놔두면 점점 무질서 해지지, 무질서한 군중이 우연히 군대 사열하듯이 질서 있게 서 있을 수는 없다. ====실존주의(니체), 불교(석가모니)==== [[실존주의]]와 [[불교]] 모두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부정하고, 우주 인식의 주체를 자신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니체는 불교에 심취해 윤회사상 같은 불교철학을 가져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둘은 허무한 인생을 극복하는 과정이 다르다. 실존주의는 기존의 가치나 도덕을 파괴하고, 자기중심적으로 [[권력에의 의지]]를 실현하며(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삶의 가치를 실현하자는데 비해, 불교는 자비를 실천하며 바른 마음과 수양을 통해 해탈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신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구원을 이루자는 점에 있어서는 같다. 석가모니는 누구나 성불하면 생노병사의 굴레를 벗어난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가상적(현상적) 세계에서 스스로 실체적(영속적) 세계로 뛰쳐 나가겠다는 것은 전자게임 속 주인공이 스스로 컴퓨터 바깥 세상으로 뛰쳐 나가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어떤 경우에도 그림자가 실상이 될 수 없으며, 모형이 원형이 될 수는 없다. 실제세계가 가상세계를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는 있지만, 역으로 가상세계에서 실제세계로 스스로 전이할 수는 없다. ====유물론(마르크스)==== 헤겔의 변증법과 다윈의 진화론 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이나 신이 없이도 물질 스스로 존재하고 진화할 수 있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등장했다. 유물론은 정신세계를 일체 부정하고 종교, 양심, 도덕, 기존의 가치 등을 전면 부인하고 오로지 혁명사상을 전파하며 동물적으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주의이다. 결국 스탈린이나 모택동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양심의 가책 없이 자국민 수천만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창설 자체가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 특권 지배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사유재산을 뺏기고, 언론을 통제 당하고, 공산당 1당 독재를 실현하는 등 모든 권력을 뺏긴 민중은 아무 힘 없이 복종하거나 숙청 당하는 노예계급으로 전락하였다. 결국 대부분의 공산정권은 수 많은 문제점을 들어내다가 몰락했다. 요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교회가 건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수 많은 교회가 정부의 탄압을 받아가며 자발적으로 결성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은 목숨을 각오하고 성경구절과 찬송가를 구전으로 전해 가며 순수한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개독==== [[고기]]굽기 3/14 ''하나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또 씨부렸다. 너는 이스라엘에 이렇게 구라를 쳐라. 스스로 있는 놈이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 창세기 1/1 ''내가 전부 만듦.'' 묵시록 1/8 ''[[동물원|주]]가 [[가라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곧 뒤질 것이다.'' 기독교는 영계라는 형이상학적인 이상 세계가 있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가 존재함을 믿는다. 인간과 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비해 신은 만들어지지 않은 스스로 있는(존재하는) 자이다. 신은 이 우주 만물과 모든 동·식물과 인간을 창조했다. 그리고 그 신은 내가 창조했다. 신은 시간을 지배하고 초월하시며, 처음과 나중이고, 영원히 변치 않고 항상 존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다. {{랩못함}} [[도토리묵]]시록 3/1 ''4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어흥'. [[주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씨부렸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런데 죽었다는 증거가 없으니 산 자로다. 그런데 산 증거가 없으니 죽은 자로다. 그런데 산 증거가 없으니 팔은 자로다. 그런데 죽은 증거도 없으니 [[본죽]]이로다. 그런데 죽은 증거가 없으니 [[죽]]이 아니고 전복죽이로다. 그런데 [[산]] 증거는 없지만 [[바다]] 증거는 있노라. 그런데 [[라임]] 맞추기가 존나 힘드노라.'' 루카 20/38 ''주님은 죽은 자의 주가 아니요 산 자의 주시라 [[주식]]을 사라 주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반값에 사라고 하시니'' 요한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0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didn't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딤후 4/1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과 [[동물원|주]], 곧 그가 나타나실 때와 그의 왕국에서 산 자들과 죽은자들을 심판하실 분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 노? 신고합니노.'' 기독교에서 형이하학(물질세계)은 신과 관계가 있어도 존재하지 않고(죽어있고), 신과 관계가 없어도 존재하지 않는다.(죽은 것이다.) 신을 믿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가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이며, 일시적으로 살아 움직이다 이내 소멸하고 만다. 시편 39/5 ''보소서, 주께서 내 날들을 손 너비만큼 주셨으므로 내 연수가 주 앞에서는 없는 것 같사오니 진실로 가장좋은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도 다 헛될 뿐이니이다. [[참피|세레브]].'' 신은 죄 없는 의인만을 상대하시고, 신의 영이 임한 사람은 신의 새 생명을 덧입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것이 불교 배꼈다. 마지막 때 신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보좌 앞에 불러 살아 있는 자를 죽이고, 죽어있는 자를 두번 죽일 것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