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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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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 == === 자유민주주의 관련=== 아이러니한 점은 이승만은 우리나라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사람임과 동시에 [[독재|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답게 미국식 정치 체제를 도입하려 했다. 해방 이후 만 20세 이상의 남녀 모두에게 선거권을 평등하게 부여했고, 대선과 총선 등을 실시하였으며, 지방자치제 또한 실시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육 내용에 자유민주주의에 관한 내용을 넣은 것도 이승만이었다. 그러나 권력 욕심 때문인지 [[발췌 개헌|두]] [[사사오입 개헌|차례]]의 친위 쿠데타로 정권을 억지로 연장했다. 참고로 사사오입 당시 김영삼이 이승만을 찾아가 말리려다 그대로 인생 종칠 뻔했다. 그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조봉암|도전 하는 자]]는 법을 악용하여 제거하고 정치 깡패를 동원하고 경찰들 또한 정치적으로 사용하였다. 그 때문인지 1공 시절은 깡패들이 총을 들고 설치는 정도였고 경찰의 공권력 또한 지금과 비교가 안되는 정도였다. 사회적으로도 신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오타 냈다는 이유로 신문사 사장을 구속하거나 신문사를 통째로 폐간, 정간 조치 때리는 언론 탄압도 저질렀다. 하지만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 관련하여 업적이 전혀 없다고 하긴 뭐한 게, 상식적으로 해방 이후 문맹률이 80% 내외였던 국가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 박정희와의 미묘한 관계 === 여담으로 현재 보수 정당에서 박정희와 함께 치켜세우는 대통령인데[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9799] 재밌는 점은 이승만과 박정희는 서로 생전에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당연한 건데, 박정희가 한때 자기 형 박상희 때문에 남로당에 몸을 담았고 독립운동가 시절부터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이 박정희를 좋아할 리가 없다. 더군다나 반공토벌경찰대를 대구로 급파해서 박상희를 체포 후 재판 없이 바로 총살시켜버린 장본인이 이승만이다. 이후에 이승만은 박정희를 사형까지 시키려 했었고 박정희가 체제 전향을 인정받은 후에도 과거 행적을 드러내며 수차례 진급을 누락시켰다. 박정희 역시 이승만을 두 번이나 끌어내리려고 했는데 한 번은 1952년 발췌 개헌 당시고, 다른 한 번은 1960년 3.15 부정선거 때였다. 하지만 52년도에는 전쟁 중이어서, 60년도에는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무산되었고 13개월 후 5.16을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다. 당장 이승만을 '권력에 눈먼 무능한 노인네'로 폄하하고 김구를 치켜세운 게 박정희다. 물론 이건 김구가 5.16에 동조했던 [[김신]] 장군의 친부였기 때문인 것도 있고 박정희가 개인적으로 김구를 존경하는 점도 있었다고 한다.. === 김구와 틀어진 관계 === 이승만과 김구는 평소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한 가지 때문에 대립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한 문제였는데, 이승만은 남한 단독 정부를 세우자고 얘기하던 반면, 김구는 남북 통합 단일 정부를 주장했다. 이승만 입장에서 봐도 단일 정부를 세우고 싶었겠지만 [[김일성|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이승만은 하도 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인지라 사고방식마저 미국인이 되어버렸는데 그래서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김일성을 깔끔하게 포기한 반면, 김구는 그래도 같은 동포라며 김일성을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애썼다. 의도는 김구 쪽이 옳았지만 결과는 이승만 쪽이 옳았다. 김일성은 자신을 설득하러 온 김구를 시종일관 비웃는 한편, 남한 몰래 꾸준히 탱크를 모으고 있었다. 주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제공하는 [[페름]]산 탱크가 주력이었다. 1949년 김구는 이제 갓 장교로 임관한 안두희에 의해 암살 당했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김일성은 그 동안 꾸준히 모아온 탱크를 [[한국전쟁|남한 방향으로 쏟아부어 버렸다.]] 이승만이 [[이성계]]라면 김구는 [[정몽주]]의 포지션에 있었을 것이다. 이상은 좋았지만 현실 파악 능력이 떨어져서 결국 옛 동료와 결별하고 죽임까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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