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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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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 계엄군의 실탄 사격과 시위대의 광주 장악== 20사단의 광주 증파가 결정되자 20사단은 부대이동을 하여 광주에 도착하였는데 사단 지휘차량 인솔대가 광주공단 입구에서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을 받게 된다. 여기서 그들은 시위대에게 사단장 지프차 등 지휘차량 14대를 탈취당한다. 그동안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함구하던 정부는 이 날 최초로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에 대해 발표한다. 지난 18일 오후부터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다 20일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각종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이에 격분한 시민들이 가세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었다 21일 오전 7시 현재 군경 5명과 민간인 1명이 사망하였고 조속한 시일 내에 평온을 회복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 또한, 사태의 조기 진압에 실패한 책임을 들어 윤흥정 전교사령관이 해임되고 후임에 소준열 전교사령관이 임명되었다. 한편, 시위대는 사체 2구가 실린 수레를 앞세우고 공수부대의 만행을 규탄하며 계엄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사태 해결을 위해 장형태 전라남도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였는데 장형태 도지사가 시위대 앞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설치하는 도중 도지사가 광주시장인 구용상에게 "먼저 나가서 시위대를 진정시켜달라"고 하였다. 시위대는 도지사가 아닌 광주시장이 나타나자 "도지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흥분하여 화염병과 각목을 던졌고 결국 전남도지사는 시위대 앞에 서 연설을 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대신 장형태 도지사는 헬기를 타고 직접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계엄군이 철수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으니 시민 여러분은 해산하고 생업에 종사해달라" 이에 시위대는 오전 12시가 될 때까지 계엄군이 광주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은 철수하지 않았고, 이에 시위대는 계엄군의 저지선을 돌파할 목적으로 버스를 몰아 계엄군 저지선으로 돌진을 감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최초 실탄 사격이 발생한다. 사격 명령자는 없었으며 이들은 시위대의 버스 돌진 공격으로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 사격으로 버스 운전사가 사망하였고 시위대는 "계엄군이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전남 도처에 위치한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 무장하였고 무기 사용 교육을 실시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시민군'이라 불리우는 무장시위대의 출범이었다. 시민군은 계엄군과 총격전을 시작하였으며 LMG기관총을 이용하여 전남도청과 해산을 종용하는 군 헬기 등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시위대가 무장을 하고 계엄군과의 총격전까지 벌어지자 전교사는 계엄군을 전남도청에서 철수시켜 광주 외곽으로 이동시켰으며 시위대가 전남도청을 장악한다. 계엄군이 철수하는 도중 시위대가 총격과 차량 돌진 공격을 감행하여 군 차량 3대가 전복하였고 군인 2명이 사망, 6명이 부상을 당했다. 국무총리인 신현확은 사태의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직에서 사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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