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1910년대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영국 ==== [[에드워드 7세]] 사후 [[조지 5세]]가 왕으로 즉위했다. 이때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일이 무지막지한 산업력으로 영국의 해군력을 추월할 위기를 맞고 있었다. 영국 법에 따라 영국 해군력은 세계 2위와 3위 해군력의 합보다 더 강해야 했고 독일에 의해 밸런스가 작살나려 하자 영국은 해군 양성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독일도 해군을 양성하면서 영국과 독일 간의 군함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으로 인해 영국의 해군력이 강해지면서도 대신 국력은 줄어들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 독일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략하자 영국도 독일에 선전포고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 끼어들었다. 이때 일본이나 아라비아 반도 토후국들처럼 영국과 동맹이나 전쟁 관련 조약을 맺은 나라들은 영국을 따라 전쟁에 참전했다. 초기 영국은 동맹국의 지나치게 강력한 방어를 뚫지 못하고 갈리폴리 전투, 솜 전투 등에서 여러 차례 패했다. 독일군은 무제한 잠수함 공격과 체펠린 공격으로 영국을 괴롭혔지만, 탱크까지 개발해 독일을 쳐들어온 영국의 강력함이 드러나 결국 독일이 패배했다. 한편 승전국이 된 영국은 이미 아랍인들과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인들의 국가를 세우기로 했는데, 당시 유럽에서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촉발된 반유대감정이 극에 달해 유대인들은 유럽에서 발 붙이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영국의 부유층을 차지하던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나야겠다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결국 영국 정부의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 국가를 세우기로 결정되자 아랍인들의 반발이 매우 커졌다. 또한 전쟁 도중 영국은 막대한 국력 소모를 겪은 한편 세계대전 특수로 급성장한 미국이 영국을 따라잡으면서 영국의 세계 최강국의 지위가 조금씩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