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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국 === ==== 러시아 제국 ==== [[니콜라이 2세]]가 자유주의 세력의 뒤통수를 후려친 뒤에도 여전히 대가리 깨져도 차르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1905년 1월 22일 일요일에 차르에게 완곡하게 민생을 살펴달라는 시위를 벌였으나, 되려 군인들에 의해 대학살을 당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으로 민심은 완전히 차르에게 돌아서버렸다. 포템킨 함에서도 수병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에 분노해 반란이 일어났다가 진압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일전쟁]]에서 한낱 일본 따위에게도 쳐발리는 일이 일어나버려서 [[그레이트 게임]]은 허무하게 종식되었다. 이후 독일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평생 원수였던 영국과 어느 정도 뜻을 함께하게 되는데, 마침 카자르 왕조 페르시아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영국과 함께 페르시아를 지배하기로 하고 1907년에 영러협상을 통해 동맹을 맺었다. 한편 당시 황태자였던 알렉세이가 혈우병을 가진 상태로 태어난 바람에 황후가 치료자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그리고리 라스푸틴]]이라는 괴승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척 했고, 이 이후로 라스푸틴은 차르 부부의 총애를 받아 [[비선실세]]가 되었다. ==== 프랑스 ====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은 [[에밀 졸라]]의 폭로로 인해 재조명되었으며 1906년이 되어서야 최종적으로 드레퓌스가 무죄선고를 받았다. 이후 이 사건에서 추한 모습을 보였던 가톨릭 세력은 큰 비난을 직면하게 되었고 1905년 정교분리법이 통과되면서 오늘날 프랑스 이념의 기본 가치 중 하나인 [[라이시테]]가 대두되었다. 한편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을 이어나가면서 세계 2위 수준의 식민제국이 되었다. 영국과는 식민지 부분에서는 경쟁했으나 외교적으로는 독일의 팽창을 막기 위해 1904년 영불협상을 체결해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 영국 ==== 영토를 확장해 남극까지 진출하면서 세계 모든 대륙에 영토를 가진 세계 최강 국가로 올라섰다. 세계적인 전성기를 구가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후 아들인 [[에드워드 7세]]가 영국 왕(이자 인도 제국 황제)으로 즉위했다. 이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와 구분해 에드워드 시대로 불리며 전체적으로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시대로 알려져 있다. 한편 외교적으로 여태껏 고립정책을 취해왔던 영국은 독일의 세계 정책에 대항해 동맹을 찾을 필요가 있었고 결국 1904년 숙적이던 프랑스와 영불협상을, 1907년 그레이트 게임의 적이었던 러시아와 영러협상을 체결하면서 삼국 협상 체제가 수립되었다. 독일의 팽창이 꽤 심각한 위협이 되었기에 아예 영국 의회는 영국의 해군력을 세계 2위, 3위의 합보다도 더 높아야만 한다는 해군법을 제정하면서 대대적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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