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월남사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진조 == {{문무겸비}} {{헬보딸}} 태사 진수도와 그의 조카 태종 진경에 의해 창건된 진가는 이가 말기에 벌어진 폐단들을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제국은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아갔다. 얘네는 특이하게 근친혼으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그때문에 제국의 주요 관직들 대부분을 황족들이 독점하는 족벌정치가 이뤄졌다. 또 전임 황제가 후임 황제 뒤에서 태상황으로 군림하며 실권을 휘두르는 베트남사 최초의 태상황 제도가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몽골의 침입으로 기나긴 몽월전쟁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순식간에 수도 승룡이 몽골군에게 점령되는 등 패배를 거듭했지만 진흥도 장군의 청야전술 및 유격전을 병행한 전술, 오랜 숙적인 애뢰와 점성의 협력으로 3차례의 몽월전쟁은 백등강에서 몽골군의 완패로 끝난다. 몽월전쟁에서 승리한 진가는 동맹이었던 점성과의 대립으로 월점전쟁이 발발하면서 또다시 황폐화된다. 처음에는 점성에 여러번 승리하여 사실상 점성을 자신의 속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포 비나수오르가 점성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역으로 진가가 점성에게 털리게 된다. 승룡은 점성에게 넘어가고 황제 예종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대를 이끌고 점성으로 쳐들어갔다 전사했다. 이렇게 진가를 탈탈 털어대며 강력한 위세를 떨치던 점성왕국의 전성기는 여계리 장군이 황강 전투에서 비나수오르 왕을 사살함으로서 막을 내린다. 제국을 구원한 여계리는 황실의 외척으로 급부상했고 실권을 장악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계리는 자신의 이름을 본명인 호계리로 바꾼다. 결국 진가도 이가와 같은 방식으로 황족들이 호계리의 호씨일가들에게 숙청당하며 멸망한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