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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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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성과 1집 == {{도}} [[PC통신]] 시절 음악 동호회에 기웃거리며 [[좆문가]] 행세를 하던 [[이석원]]은, 당시 [[PC통신]]을 이용하는 실제 음악인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언니네이발관이라는 [[밴드]]를 하고 있다는 구라를 친다. 언니네이발관은 이석원이 본 세미포르노<ref>인조 성기를 달고 촬영한</ref> 영화에서 따왔다고 한다.<ref>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indieband&no=928232</ref> 그리고 네임드화 되어 라디오에 출연하게 됐는데, KBS [[공중파]] [[라디오]]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까지 밴드를 하고 있다고 공식적인 구라를 치게 되었고, 이름값 하기 위해 진짜로 악기 주자 구해서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이듬해 동일한 라디오 프로에 재출연해 자작곡을 소개한다. 이 방송을 듣고 정대욱이 기타리스트로 합류한다. 이석원의 표현에 따르면 '당시 밴드들은 외국곡 카피하기에나 급급했고 자작곡은 음반 낼 때나 낼 수 있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고, 언니네이발관은 그 와중에 첫 공연부터 자작곡으로 세트리스트를 모두 채운 최초의 밴드였다고 이야기 한다. 당시의 그런 풍토를 비판한 곡이 1집 수록곡 [로랜드 고릴라]. 내가 처음 너를 봤을 때 너가 하는 일이라곤 남의 흉내 내는 것 최초의 라이브 공연은 클럽 드럭에서 이루어졌는데 처음 공연을 하겠다고 했을 때 클럽 측에서 '우리 애들은 자작곡을 할 실력이 안 되는데, 너희가 자작곡을 해버리면 우리 애들이 위축 돼 버릴 수 있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언니네이발관은 '우리는 허접이다.'를 어필하기 위해 노력해서 겨우 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ref>당시 그 '우리 애들'이 크라잉넛이었다고.</ref> 그 공연이 대성공해서 데모 앨범도 동나고 메이저 기획사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음반을 낼 수 있게 됐다. 런던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을 하는 등 정성을 들여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를 발매한다.(1996년) 언니네이발관은, 상업성 추구하는 밴드 보면 물어뜯지 못해 혈안인 병신 [[힙스터]] 인디충 새끼들의 아이돌이지만 정작 이석원은 그놈의 인디타령 싫어한다고 맨날맨날 얘기한다. 상업적으로, 대중적으로 널리 어필할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어 했고 외국 스튜디오에서 음반을 마스터링하는 등의 모습은 그 알량한 인디 아마추어리즘과는 거리가 있다. 하여간에 1집은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흥행했지만, 기타 정대욱은 고3 수험생활을 위해, 드럼 유철상은 흑인음악 하겠다며, 베이스 류기덕은 게임회사에 취업을 하는 등 각자 제 살길 찾아 떠나면서 밴드가 텅 비게 됐고 1997년 한 해는 쉰다. <ref>정대욱은 대학 가서 다시 합류하지만 리듬파트는 아예 공백이 됐기 때문에 2집 작업을 처음엔 미디로 했다고 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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