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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가 서울 다음으로 큰 이유== 지형상으로만 따지면 부산은 절대 330만 인구가 몰릴 만한 지역이 아니다. 워낙 산이 많아서 산동네가 넘쳐난다. 이런 지형적 특징 때문에 버스기사들의 운전 실력은 [[이니셜D]]를 방불케한다. 실제로 조선시대까지 경상도 최대도시는 남강을 끼고있는 [[진주]]였고 부산은 김해평야를 독차지하고 있었던 [[김해]]나 신라 때 지역 중심지를 맡았던 양주[[양산]]에 비해서도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애초에 그때의 부산은 동래 산하의 하위 행정구역 중 하나(동래도호부 부산면)였고 일본과 가깝다는 점 때문에 대일본 방어를 위한 군사기지(부산진성) 정도나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로 부산과 동래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일본 때문에 개항장으로 지정되고 경부선 철도도 깔리게 되면서 부산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이 부산을 동래에서 독립시켜 버렸다. 그리고 진주에 있었던 경상남도청을 뺏어다가 경남 동쪽에 치우쳐 있는 부산에다 던져주기까지 했다. 동래는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에게 계속 땅을 뜯어먹히고 광복 이후에는 부산에 완전히 먹혀 버린다. 아들이 아버지를 집어삼킨 격.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도 이미 평양과 함께 제2의 도시를 두고 다투던 사이였다. 물론 지금처럼 난잡한 도시가 되버린 건 [[한국전쟁]]의 영향이 크다. 북한군에게 낙동강 근방까지 밀리면서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에 몰려들었고 부산은 임시 수도로 지정된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단 한 번도 점령하지 못한 곳이다. 안티테제인 [[강계군]]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단 한 번도 점령하지 못한 곳이다. 휴전협정 후 다시 서울로 원상복귀되지만 여전히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남쪽 도시를 키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정부에서 부산을 큰 도시로 키워주었다. 다만 직할시가 된 건 부산이 특별시 달라고 떼를 써서 이거라도 처먹으라고 직할시 명칭을 내려준 거지 정부가 알아서 직할시 명칭을 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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