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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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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엘 알라메인 전투 ==== 지상전은 독일군이 확실히 우세에 있었다. 하지만 보급이나 항공전은 달랐다. 영국군의 폭격기와 전투기는 점점 늘어났고 안 그래도 부족한 독일군이 영국군을 정면에서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점점 드러났다. 지상군 입장에서 무시무시한 슈투카 폭격기도 전투기한텐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슈투카의 손실도 점점 늘어만 갔다. 6월 29일 마트루흐를 지난 추축군은 해안도로를 따라 푸카를 통과해서 엘 다브로 진격했다. 독일군은 사막길을 지나가야 했다. 이 사막길은 남쪽의 막힌 길인 카타라와 엘 알라메인의 기차역과 주위에 만들어둔 요새까지 이어져 있었다. 롬멜은 저 요새를 부수라고 지시했다. 독일군이 4주간 진격했기 때문에 병사들은 많이 지쳐있었지만 롬멜은 이 요새를 지키는 병력이 여태껏 쳐부순 영국군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었다. 영국군은 항공전력 관리가 잘 되어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온갖 폭탄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반면에 독일군은 전투기 숫자가 한참 모자랐기 때문에 간간히 요격기를 출동시킬 수 있었다. 7월 1일 제90 경사단은 집중포화를 당했고 추축군 전체가 후퇴했다. 엘 알라메인 전투는 3주간 계속됐는데 전투가 끝난 시점에서 제8 군은 추축군을 10km도 채 밀어붙이지 못 했다. 이건 사실상 영국군의 패배를 의미했다. 완전히 지치고 제공권도 없는 상대를 끊임없이 압박해서 얻은 결과가 고작 10km라니. 영국군은 좀 재편과 훈련이 필요했다. 일단 나일 강이 함락당하는 참사는 막았지만 독일군은 아직 건재했다. 영국군 상층부에서도 이 전투를 사실상 영국군이 패전했다고 판단했고 8월 초 사령부를 방문한 처칠은 오친렉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해롤드 알렉산더를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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