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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가 요동땅을 정복했다? == {{빛과어둠}} [[파일:91e9cf2e691fa8977c923896cd6875fc.jpg]] {{인용문|평안도의 옛 경계는 청석령에 있었는데, 고구려의 백암성과 안시성이 있던 곳이다|[[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상업과 더불어 고려 왕정이 가장 밀었던 사업이 바로 북벌이었다. 반도에만 갇혀있으면 외세에 계속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북벌은 반도국가로서 필한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왕건은 발해를 친척국으로 삼고, 고구려를 계승해 고려라 국명을 칭한 것이다. [[조선 왕조|건국적 이념이 중화에 대한 사대로 시작한 어느국가와 달리]], 고려는 시작부터 북벌을 위해 태어난 나라인 것. [[묘청|어느땡중]]이 [[평양|서경]]을 수도로 삼고 대위국 만들어서 북진을 추진하자고 빼애액했으나 당시 [[요나라]]랑 [[송나라]]절반을 순식간에 따먹한 최강자한테 개기면 즉사라는 것을 안 머튽님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 땡중의 [[평양|고향]]은 반역향취급을 받게되었다. 근데 수백년뒤에 [[민족주의]]가 흥하니까 [[안창호]]<ref>묘청을 매우 좋아했다.</ref>, [[신채호]]같은 양반들이 오지게 빨았다. 이건 사실이다.실제로 공민왕 시절 이성계는 관북지방(쌍성총관부)만이 아니라 요동지역으로 쭉쭉~ 진출했었다. 원래의 랴오둥반도(요동반도)지방을 쭉정복하고 당시의 고구려가 차지하고있던 요동의 약 70%정도를 먹었을거다. 하지만 고구려가 요동이랑 같이 먹던 [[송화강]]유역은 먹지 않았기 때문에 영토가 고구려보다 넓다고 한 서술은 에바다. 하지만 명나라와 사이좋게는 지내야겠고, 개경과의 거리는 졸라게 멀고 그렇다고 뽑아먹을만한 경제력도 안되고 결정적으로 [[이성계]]가 요동정벌중 실수로 물자를 불태워버린마당에 먹일입도 없고 고려에 투항한 요동출신 군벌이 고려 머튽님들에게 따당해서 탈출하는등의 [[공민왕]]을 비롯한 여러 머튽님들의 악재로 인해 허사로 돌아갔다. 아니 그런거 따지고봐도 당시 고려는 [[왜구]]때문에 개경 왕궁까지 털려서 전국이 초토화되었는데 공민왕이나 이성계나 뽑아먹지도 못할땅 먹어서 경제 더 씹창낼빠에는 안먹는게 낫다고 봤을거다. 문제는 근대이전까지 만주땅에서 요동말고는 개쓰레기땅오브 쓰레기땅이라는것. 그래서 명나라가 요동을 안정적으로 따먹은 뒤에 세워진 [[조선]]은 그나마 외진데고 쓸만한 땅인 [[4군]] [[육진]]먹고 난 뒤로는 영토확장의 영자도 꺼내지 않게 되었다.<ref>참고로 명나라는 특히나 6진을 개척할때 명나라가 만주 관리를 위해 설치한 관직인 [[누르칸도사]]가 통치하는 영역과 겹쳐서 영토분쟁이 생기기도 했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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