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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한의 제국=== 고머 삼국때는 갓중화에게 다들 머리를 조아렸으나 내부적으로 연호른 쓰는등 제국 기분만 냈다. 이를테면 세력균형 때문에 남북조는 서로 백제왕에게 경쟁적으로 책봉해주며 작위와 직위를 선물해 줬다. 어디까지나 현대적이거나 서양의 대등외교 같은건 아니지만 일종의 외교적 립서비스였다. 제국 기분만 낸 것으론, 머한사상 최초로 연호를 쓴것은 갓구려의 갓개토대왕님이시다. 심지어 신라가 아직 찐따이던 시절에 따까리로 부리기 까지 하였다. 이후에는 신라도 리즈시절때 연호를 써보지만 이후로는 썼다는 기록이 없다. 통일신라때 머한사상 처음으로 묘호를 쓴다. 그것이 바로 태종 무열왕(김춘추)이다. 허나 역시 이후로는 묘호가 없었다. 발해는 당나라 마냥 삼성육부제와 국왕마다 연호를 사용하는등 기분을 좀 더 내보기도 했지만 대외적으로는 당나라에서 책봉해준 발해국의 명칭 과 발해국왕 칭호를 사용했다. 반면 내부나 일본에서는 고(구)려라고 했고 갓중화가 머한민족들에게 하대하듯 일본을 대했기 때문에 '재들 뭐임? 고려 망하지 안음? 아직 안망했냐? 근데 저새끼들은 왤캐 건방지냐?'며 혼란스러워 했다고 전한다. 고려때는 황제를 칭하는왕들도 있었으나 중국이랑 친하게 지내기 위해 여전히 갓중화의 따까릴 자처했다. 송나라와 당나라 제도를 모방해 2성 6부제를 시행하고 준풍 광덕등의 연호를 써보기도 했지만, 금나라가 사대하세욧! 이라고 하자 묘청, 정지상등 서경파가 오랑캐랑 놀면 안댐 이라면서 황제국을 자처하고 금국을 정벌할것을 주장했다. 허나 김부식을 위시로한 개경파 문벌귀족들은 기득권층이라 이를 반대하자, 수틀린 묘청이 난을 일으키나 진압당한다. 그나마도 몽골족에게 무려 7차례나 영혼까지 털린다음 2성 6부제와 묘호까지 못쓰게 되고 제후국의 예로 다시 시호(고려후기 충O왕 임금 이름들은 원나라에서 내려준 시호다. 반면 공O왕 은 명나라가 내려준 시호. 묘호는 신하가 사후 공덕을 칭송하면서 함께 올려주는것이다.)만을 쓰며 황제국 기분마저도 못쓰게 되었다. 조선때는 갓명의제후국임을 매우 강력히 어필하며 정부구조도 제후국의 예인 6전제를 사용하였지만, 묘호는 양보 못했다. 이거때매 유교주의자 성종이 다시 왕으로 돌리자고 했다가 신하들이 반대해서 물렸다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묘호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성종이지만 아들 연산군이 가장 간지나는 묘호중 하나인 성종을 뙇 올려버린다. 그리고 묘호쓰는거 보고 명나라 신하들이 지랄했다. 그덕에 조선 조정은 땀 삐질흘리며 뇌물좀 바쳐야 했을 께다. 사신들도 걍 뇌물받으려고 쑈한거일거고. 조선 끝자락에 군밤왕이 머한제국을 선포하고 연호를 광무라 정했으나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 되려 고종 혼자 쌩쑈만 하다가 비웃음만 당했고 좃본도 걍 합방 하고나서 도로 국명을 조선으로 고쳐놨을 정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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