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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장인정신}} 아마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의 하랍빠와 모헨조다로에서 문명이 발달했다. 이 문명은 생각보단 상당히 발달했는데, 기원전 1500년경 정도에 아리안 씹새끼들이 침략해서 공포의 갠지스 강이 떠오르고 아리안 개새끼들은 토착 문화와 지들 문화를 이용해 베다문화와 힌두교 문화를 대충 완성했다. 그래서 카스트가 생기고 토착민들은 그냥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역사적 사건을 일단 대충 넘겨서 기원전 6세기엔 아리안 씹새끼들이 토착민 국가들을 침략해서 노예로 삼다가 지들끼리도 분열해서 좆나게 싸우고 있었는데 마가다 제국인가 하는 새끼가 대충 다 통일했다. 이 시기엔 정확한 숫자를 알기도 힘든 좆같은 신분제와 62개의 종파가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불교와 자이나교도 등장했다. 불교는 사실 좆쩌리였는데 불교 등장 후 좆나 개쩌는 귀족 시스템을 완성한 불교충 악마 제국 마우리아 제국이 등장했고 아따 나가 신이랑께를 시전하며 좆같은 학살을 감행했다. 하지만 사악한 자란 좆간지 칭호가 있었던 아소카가 착한 척하는 버러지한테 훈계질을 들은 후 극대노로 풀발기해서 학살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정복과 학살을 줄였다. 아 물론 아소카 이후에도 이 좆같은 제국은 잔혹한 고문과 학살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내부인들도 온갖 좆같은 이유로 반란 갈기고 정복된 이민족들도 개지랄하고 그리스인과 유목민들까지 침략하는 난세를 열고 망했다. 물론 이 부분은 하도 넘어가서 마우리아 제국은 의외로 온갖 좆같은 꼴을 보기 전에 진작 멸망당했다. 대충 짱깨도 유목민들 침략 받기 전에 한나라가 이미 망해있던 것과 같다. 하여튼 씨발 마우리아가 하도 막장으로 통치해서 열린 난세는 지속되어 그리스인들 이후론 무슬림들까지 좆나게 침략했고 이 좆같은 무슬림들은 인도 귀족들과 함께 인도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물론 인도에 정착한 유목민들도 좆나게 깝치고 다녔지만 무슬림 유목민 아니면 결국 죄다 좆망해서 운이 좋은 새끼들 제외하면 대다수가 수드라나 그 이하의 천민이 되어 힌두바퀴 성님들한테 강간당하는 엔딩을 당했다. 그러나 몽골이란 뜻인 무굴 제국은 좆간질로 인도를 거의 통일했고 섹스에 환장한 샌드니거 무슬림들은 힌두바퀴들마저 강간하고 다녔다. 그래서 Jauhar 같은 전똥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렇게 천민들이 강간당하는 와중에도 지옥의 인도 귀족들은 지들한테 인도의 저력을 몰빵해서 잘 안 망했다. 심지어 무굴한테 정복을 당해도 마치 조선 같은 독립국들로 남았다. 그래서 아우랑제브가 이 좆같은 새끼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나라가 막장이 되었고 나중엔 좆같은 대영제국까지 지랄해서 무굴이 망했다. 대영제국은 인도의 복잡한 신분제가 좆같아서 우덜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영국의 귀족들은 프랑스 천민들과 달리 나름 세련된 방법으로 인도한테 삥을 뜯었다. 그래서 인도 귀족들도 조교되어 영국에 환장하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주인님을 배신하기로 했다. 근데 인도 귀족들도 좆같은 새끼들이 많아서 지들끼리 통일파와 분열파로 갈라져 싸우다가 현재의 인도가 여간한 새끼들 다 따먹고 파퀴스탄과 방글라바퀴들만 못 따먹었다. 아 밑에 있는 새끼들도 못 먹었나? 이 아리아인들은 우월한 무력으로 현지인(=드라비다인)들을 죽이거나 노예로 삼거나 쫓아내면서 인도 아대륙 거의 전부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오늘날 소위 "인도인"들도 이 아리아인과 드라비다인 사이의 어딘가쯤에 위치한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북인도일수록 아리아계 문화가, 남인도일수록 드라비다계 문화의 영향력이 강하다. 그래서 인도는 남북간 문화/언어 차이가 많이 난다. 정복자 아리아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 악명 높은 '''카스트 제도'''(카스트는 포르투갈어고 현지에서는 "'''바르나'''"라고 한다고 하더라)이다. 아리아인이 금,은수저계층(브라만과 크샤트리아) 및 동수저계층(바이샤)이 되었고 드라비다인들은 기껏해야 플라수틱수저계층(수드라)나 흙수저(달리트)가 되어 버렸다... 그 외에도 중요한 경전인 "'''베다'''"가 쓰여지고 브라만교가 널리 퍼졌다. 그런데 인더스 문명의 유골 DNA 조사결과 인더스 문명의 건설자들 역시 아리아인이라고 한다. 인더스 문명의 민족교체는 그냥 같은 아리아인들끼리 싸운거고 드라비다인들은 원래부터 남인도에 살던 인간들로 보고 있다. 힌두바퀴들 자살각이네 유일한 자랑거리마저 상실. 기원전 6세기-4세기 무렵에는 북인도 지역에 여러 왕조들이 등장해서 자기들끼리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 중 기원전 5세기 즈음에는 오늘날 네팔 지역의 작은 왕국의 왕자 출신의 한 수행자가 나타나 제자들을 모으고 전에 없던 새로운 사상을 설파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다. 기원전 4세기 즈음에는 알렉산드로스가 북서쪽에서부터 쳐들어 왔지만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만 조금 집적대다가 제 풀에 지쳐 돌아갔다. 그 후 찬드라굽타(기원전 320년~기원전 298년)라는 왕에 의해 '''마우리아 왕조'''라는 왕조가 생겨나, 그 손자인 '''아소카 대왕'''(기원전 272~기원전 232) 때에 전성기에 이르렀다. 아소카 대왕은 남인도까지 원정을 나가서 그때까지의 인도 역사상 최초로 인도아대륙 거의 전부를 통치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는데, 그 과정에서의 폭력에 환멸을 느끼고 불교 신자가 되어 비폭력과 채식을 장려했고 곳곳에 사자상과 법륜(인도 국기에 있는 바로 그것)을 새긴 석주도 세웠다. 아소카 사후 마우리아 왕조는 쇠퇴일로를 걷다가 끝내 망했고 좀 많은 혼란 끝에 '''굽타 제국'''이 등장했는데(약 4세기경) 그 후 200년 동안 인도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고전 문화(문학, 건축, 예술, 의술...)가 발전했으며 수학 분야에서는 '''0과 무한대'''의 개념이 생겨났다. 당시 인도 천문학자들은 지구 둘레를 측정하고, 지구의 자전과 지동설을 주장하는 등의 성과를 이룩했다. 다만 마우리아 왕조 동안 흥성하던 불교는 새로 등장한 힌두교(예전의 브라만교에서 진화했다)의 반격을 받아 쇠퇴 끝에 거의 소멸했다. 정작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로 퍼져 나간 불교가 성공적으로 정착된 점과는 대조적이다. 그 후 북서부에서의 이민족 침입으로 굽타 왕조는 약해지다가 망했고 그 후 약 5세기 동안 인도에는 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정작 지금까지 북쪽에서 이 난리가 일어나고 있을 동안 남인도에서는 별개로 자체적인 문명이 꾸준히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11세기 무렵부터 새로운 이민족들('''이슬람교도들''')이 북서쪽에서부터 몰려와 이슬람 국가를 인도 땅에 세우기 시작했다. (인도 불교의 마지막 명맥이 끊긴 것도 그 영향이 컸다.) '''델리 술탄 왕조'''가 대표적인 이슬람 왕조이고 그 외에도 여러 왕조가 난립했다. 이슬람은 분명 기존의 문화를 파괴하는 악영향도 끼쳤지만 새로운 문화를 전수하거나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또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는 등의 평등주의적인 주장에 힘입어 그 교세를 불려나갔다(현재까지도 인도 제 2의 종교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다). 15세기 끝무렵 웬 듣보잡 거지놈이 배를 타고 와서 통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폭력을 행사하고 약탈행위까지 하는 패기를 보였다. 그 거지의 이름은 바로 바스코 다 가마로, 이후 수백 년간 인도의 부를 찾아 몰려올 수많은 유럽 침략자들 중 최초였다. 16세기 무렵에는 티무르의 후손을 자처한 바부르(1526~1530)가 '''무굴 제국'''을 세웠다. 무굴은 몽골이라는 뜻으로, 바부르가 자신이 (칭기스칸의 후손인) 티무르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과정에서 나온 국명이다. 이 무굴 제국은 바부르의 손자 [[악바르 대제]](1556~1605. [[알라후 아크바르]]! 할 때 그 악바르가 맞다. 아까 나온 아소카 대왕과 함께 인도 역사 전체에서 대왕 칭호를 받은 단 두 사람 중 하나다.) 때에 절정에 달해 북인도 거의 전부를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했는데 그 비결은 이슬람 외의 힌두교 등 타 종교도 대우하는 관용적인 정책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악바르의 손자인 샤 자한(1628~1658)이 애 낳다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지은 것이 [[타지마할]]로, 무굴 제국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샤 자한이 아내 무덤 건설에 매진하여 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되자, 그 아들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폐위하고 형을 죽인 뒤 황제(1658 ~ 1707)가 되었다. 아아아주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던 아우랑제브는, 타 종교 신자들에게 인두세(지즈야)를 부과했으며 힌두교 사원들을 파괴하고 시크교 지도자를 죽이는 등의 폭거로 민심을 잃었다. 그는 이어 남인도를 정복하기 위한 군사 원정에 돌입했는데, 25년 동안 (주로 데칸 고원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벌였지만 게릴라전에 휘말린 끝에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여간 외적으로는 무굴 제국의 영토가 이 때 최대 규모를 달성했으나 내적으로는 선대에 비해서 크게 부실하게 되었다. 아우랑제브가 죽기 전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던 무굴 제국은 결국 마라타 연합, 페르시아, 시크교도들 등에게 털리다가 수도 델리 부근만 남기고 완전히 와해되었다. 무굴 제국의 몰락 후 인도는 다시 수많은 중소 국가들로 쪼개졌는데 그 틈을 타 유럽 국가들(특히 영국과 프랑스)이 인도에 대한 영향력을 점점 늘려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프랑스가 유리했지만 플라시 전투(1757)을 기점으로 프랑스 세력은 거의 망했고 영국이 인도에서 가장 강한 유럽 세력이 되었다. 그 후 동인도 회사를 앞세운 영국은 인도 거의 전부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소/돼지기름을 바른 소총을 쓰기 싫다는 인도인 병사(세포이)들의 요구를 영국인들이 씹자 화가 난 세포이들이 반란, 일명 "세포이의 항쟁"(인도 측에서는 "독립전쟁"으로 부른다)을 일으켰고(1857) 이를 진압하느라 애 좀 쓴 영국은 안 그래도 적자를 보던 동인도회사 문을 닫고 영국 왕을 "인도 황제"로 하는 '''인도 제국'''을 출범(1876)시켰다. 좀 더 직접적이고 유화적인 통치를 위해서였다나. 이 인도 제국은 오늘날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심지어 미얀마까지 이르는 땅을 포함하는 거대한 국가였다. 정작 주권은 영국에게 있었지만;;. 뭐 그래서 영국은 인도에서 정부를 세우고 도로와 철도를 깔고 공장, 농장, 광산도 지었지만 뭐 그거야 자신들의 이익 창출을 위해서였으니. 그래도 워낙 지역간 장벽이 높아서 어찌 어찌 분할 통치가 가능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마하트마 간디]]'''와 [[인도 국민 회의]]의 지도 아래 조직적인 '''비폭력''' 독립 운동이 벌어지자 영국의 인도 통치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인도의 독립을 허가해줬다. 그런데 문제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져서 한 지붕 밑에서 살기를 거부한 것. 결국 1947년 8월 15일 '''인도 공화국'''이 독립했고 그보다 하루 전인 8월 14일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오늘날 [[파키스탄]]+[[방글라데시]])도 독립했다. 이때 종교적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 이동한 인구가 양국을 통틀어 1300만(!)이나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유혈 사태로 죽은 사람은 100만이나 되었다. 간디는 이를 중재해보려고 했지만 한 힌두교 광신자에 의해 암살당했다. 이슬람에 우호적인 간디는 '마하트마 간디'가 아니라 '무함마드 간디'에 불과하다며.... 뭐 하여간 그래서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은 지금까지도 서로 남북한은 저리 가라 정도로 서로를 째려보면서 원수 취급을 하고 있다. 초대 수상 자와할랄 네루 밑에서 그럭저럭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고, 사회 전반의 부패가 심하며 속도도 좀 많이 느리지만 발전도 계속 하고 있고, 3세계에서 큰 목소리도 내면서 현재까지 인도 공화국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겉으로만 볼 때는 은근 좆사기 최강인 지역이었다. 폐쇄적이었던 동아시아와는 다르게 옛날부터 유럽, 서아시아와 문물, 무기 교류가 활발했고 토지의 양과 질도 무시무시했으며 자원도 많아서 그야말로 개사기인 땅이었다. 국가가 아닌 지역으로 봐서 인도계 국가들을 합치면 인구도 그 중국을 능가했으며 오랜 기간 세계 1위 GDP를 가졌던 지역이다. 군대 역시 외형적으로 엄청났는데, 인도인들은 어마어마한 내전을 바탕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서아시아의 무기와 전쟁 방식을 흡수했으며 유럽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치고 나갈 때도 부를 바탕으로 유럽인들을 고용하여 군대를 훈련시키거나 부하로 삼기도 했다. 막대한 자원과 부를 활용하여 유럽의 무기나 전쟁 방식 자체를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었다. 비록 분열과 다툼이 심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의 상위호환이라고 볼 수도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런 외형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 대놓고 병신이었다. 맨날 소수의 모험가 집단이나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을 개털어버린다. 우즈벡한테 개털리고 조국이 좆망한 모험자 바부르조차 개털어버린 지역이다. 심지어 무굴은 초창기에는 아프가니스탄 군벌 한 명에게도 개털렸으나 인도 국가들만 만나면 무쌍을 찍었다. 인도 새끼들이 놀라운 건 이새끼들은 정말 외형적으로만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 놈들이었는데, 막상 붙으면 병신이라는 거다. 인도 기록이 부실한 점도 있고 해서 많은 학자들도 대체 어떻게 허접한 소수 집단이 막강한 인도인들을 이길 수 있었는지 의문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막대한 자원과 인구 덕분에 나오는 사기적인 경제력과 선진적이고 강력했던 문명들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은 무기들과 전쟁 방식, 카스트로 인하여 안정적이고 탄탄한 내부를 가졌던 대국들 겉으로만 보면 이웃들을 모조리 씹어 먹고도 남았다. 까놓고 이새끼들이 압도적인 위력으로 중동이나 동남아를 강간, 정복하거나 심지어 동남아 정복 후 중국을 정복하고 사상 초유의 엄청난 제국을 건설한 역사를 가졌어도 다들 납득할 수 있는 결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힌두교나 카스트 등을 이용하면 은근히 인도인들을 쉽게 결속시킬 수도 있었고 하지만 실제 역사는... 알렉산더와 그 부하들 역시 인도 새끼들의 외형만 보고 그대로 회군했으나 막상 붙었다면 인도 전체를 정복했을 수도 있을 정도로 병신이었다. 현재도 반군들이 점령한 지역은 인도인이라도 마음대로 못다닌다.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7051544774362 인도군이 대처를 ㅅㅂ처럼 해서 반군이 증가하는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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