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유비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이릉좆망== 보통 삼국지를 좀 아는 사람들은 촉나라가 유선과 황호의 병신짓으로 망한 줄 알고 있지만 이미 유비 때부터 망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관우의 트롤짓을 막지 않고 방관하여 형주를 잃게 되어(정확히 말하면 형주지방의 3분의 1정도를 차지함) 제갈량의 구상을 망가뜨리고 이릉에서 좆망해서 가뜩이나 없는 촉의 인재풀을 얇게 만들어버렸다. ㄴ유비가 관우 트롤링을 어떻게 막냐? 이때는 전자통신도 없던때인데 유일하게 소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편지 전하는건데. 관우가 임저에서 죽었을때도 1달이 지나서야 유비한테 소식이 전해졌다. 그럼 관우한테 맡겨야지 유비가 어떻게 간섭을 할수있냐? 안그래도 익주점령 한중공방 다 끝나서 뒷수습이 하루이틀 걸릴 시기도 아니었는데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하고 간에 유비는 작전을 잘못 짰다. 유비가 관우를 죽인 건 너무하지 않냐는 논지로 이릉대전을 일으켰다. 문제가 뭐냐 하면 이릉은 현재 '''싼샤 댐'''이 거기에 있으며 '''싼샤 댐은 세계에서 최고로 큰 댐'''인데 그 길이가 무려 '''2,335m'''나 된다. 강 폭이 2킬로미터가 넘는다고 이 친구야. 뼈에 와닿게 설명할께. '''저 강의 폭이 [[서울특별시]]에 있는 [[한강]]의 2배'''란다. 응, [[여의도]] 정도는 그냥 집어삼킬 정도로 큰 강이라고. [[파일:물 위에 쌓은 만리장성.png]] 이릉대전이 벌어진 곳에 현재 세워진 싼샤 댐. '''물 위에 세워진 만리장성'''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댐이다. 싼샤 댐? 비용은 둘째치고 '''짓는데 11년(1994년 12월 건설시작 - 2006년 완성) 걸린 댐'''이다. 어때, 이 강의 규모가 어떤 건지 알겠지? 더군다나 인구라면 썩어 넘치는 중국나라가 만드는데도 11년 걸린거다. 사람이 부족해서 오래 걸린 것조차 아니다. 실가동은 그로부터 몇년 후에 한 건데 착공한 날 태어난 [[아기]]가 실가동을 할 때 이미 [[중학생]]이었다. 유비는 이릉대전을 일으킬 때 이래서 해군 훈련을 철저히 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유비는 해군은 안 썼다. 이러니까 절대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유비는 지휘통솔을 잘해서 육상전에서는 오나라군을 어느 정도 밀어붙였는데... 역시나 해군이 문제였다. 저게 지형이 벌판이었으면 촉나라의 압승인 게 팩트다. '''문제는 지형이 거대한 강'''이라는 게 문제다. 그 결과, 제갈량은 나중에 위나라에 대해 북벌을 감행할 때 한정된 루트로만 북벌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고 ㄴ한정된 루트로만 북벌을 감행하게 된건 마속때문인데? ㄴ마속은 제갈량이 한중 넘어 위로 고속도로 못뚫게 막고 샛길로 가게 만든 2차 원인이지 애초에 제갈량이 그 전략 틀을 죄다 한중에서 어떻게 넘어갈까로 한정지은건 다 형주가 없어서다. 형주가 있었으면 뭣하러 한중에 병력을 몰빵해 또한 자신을 보조해줄 인재를 찾기도 힘들어 제갈량이 혼자 촉나라의 정사와 북벌을 커버쳐야 했다. 축구로 예를 들면 스웨덴 국가대표팀에 기량 뛰어난 얘가 즐라탄 밖에 없고 다른 얘들은 뛰어나지 않아서 유로 2016에 광탈했듯이 공격수 한 명으로 판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이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만으로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촉의 인재는 있었지만 그 급의 인재들은 위나라, 오나라도 가지고 있었다. 괜히 제갈량이 서서의 관직을 듣고 "위나라엔 얼마나 인재가 많길래 서서가 저따위 관직에 앉아있는거지" 하고 탄식한게 아니다. 결국 제갈량 사후에도 촉은 촉한사영으로 비실비실대면서도 간신히 명맥은 유지했는데 동윤 죽자마자 인재풀 끊기고 위나라에 263년 잡아먹히게 된다. ㄴ 인재가 제갈량 사후에도 없진 않았다, 제갈량이 유비가 된통 말아먹은 이후 여기저기지가 몸소 나서서 여기저기서 인재를 끌어오고 숨어있는 은거 학자들을 중앙으로 끌어오는 등 별 짓을 다함. 제갈량이 팍팍 밀어준 장완, 비의, 동윤의 정치를 촉 사람들이 제갈량과 함게 그리워해서 나중에 제갈량 본인을 비롯해 이들을 촉한 사영으로 괜히 부른게 아니다. 사실상 제갈량 사후 30여년은 유비가 말아먹다 남은 인재+제갈량이 끌어들여 온 인재로 기동했다고 봐야 하는데 위에서도 언급되지만 그만한 인재들은 위나라에 훨씬 더 많았다는게...촉한 멸망 이후 물론 익주 인심 달래기용도 있었지만 촉한의 인재들이 꽤 많이 중앙에 진출하기도 했다. 물론 위-서진 놈들은 이미 지네들끼리 관직 노나먹기를 시전해서 중심부까진 못갔다만. ㄴ 근데 솔까 [[양의]]는 너무했다. 아무리 인재가 없기로서니 유비가 이미 못쓴다고 "에이 지지 그거 버려."라고 말한 그 양의를 제갈량이 또 줏어왔다. 마속이나 곽유지나 뭐 다른 인물들은 뭐라 안하겠는데 양의만은 심했다. ㄴ 정사 기록보면 양의가 실무에 능했던 건 사실이라 제갈량도 어거지로 쓰려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허구한날 위연이랑 개깽 쳐도 둘 다 안고가려고 발악했다는 기록도 있고. 그리고 유비가 못쓴다고 버렸다기보단 양의는 관우가 주워온 놈인데 하필 부딪힌 놈이 유파라서 버린 게 더 크다고 봄 ㄴ 사실 마량 살아있었으면 양의를 절대 안 썼다. 제갈량도 존나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쓴 것이다. 사실 실무 능력은 마량이 양의따위 그냥 압살하거든.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