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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포위 작전 ==== [[2053년]], 김흥국과 북한 사이의 한반도 통일 전쟁이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먼저 북한 최북단의 사리원을 점령했고, 그곳을 북한과의 전쟁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하지만 역시 북한은 다른 나라와는 달랐다. 사리원 서쪽에 있는 도시 해주조차도 점령하기가 아주 힘들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자신의 인생 최대의 소원, 한반도 통일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김흥국의 군대는 죽기살기로 북한에 덤벼들었고, 마침내 황해도 지역 최대의 도시였던 해주를 점령한다. 그리고 사기가 북돋워진 김흥국의 군대는 그 기세로 북한의 북동부에 있는 연천을 점령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새로운 작전을 개시한다. 그 작전의 이름은 '서울 포위 작전', 말 그대로 서울 주변의 도시를 순서대로 점령해서 동그랗게 서울 주변을 포위하는 작전이었다. 그 작전의 처음 희생양은 서울과 북쪽으로 접해 있는 개성. 하지만 개성은 서울과 북한 북부 지방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여서인지 접전이 계속되었지만, 역시 김흥국의 군대들은 꺾을 수 없었다. 히틀러는 개성을 점령한 후 군대를 북한 동남부의 이천으로 돌렸다. 본격적인 서울 포위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천은 개성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무너졌고, 김흥국은 파죽지세로 북한 남부의 용인으로 진격했다. 그리고 용인 역시 쉽게 함락되었다. 다음은 북한 남서부의 수원이었다. 히틀러는 수원으로 진격했지만, 북한을 너무 얕봤던 것이었을까, 수원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날 밤을 새워 수원에서 북한과 끈질기게 전투를 한 결과, 김흥국은 아슬아슬하게 '수원 전투'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군사들의 피해는 어마어마했고, 김흥국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히틀러는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내뿜어내듯이 자신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2055년]], 다시 히틀러는 북한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목표는 '서울 포위 작전'의 마지막 도시, 인천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인천을 공격해 치열한 전투를 했고 마침내 히틀러는 인천을 점령한다. '서울 포위 작전'은 성공했고, 이제 한반도의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히틀러는 이 긴 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해 북한의 수도,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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