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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지방=== {{북괴}} {{지옥}} [[평안도]], [[함경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분단 때문에 휴전선 이북 지역을 전부 북부 지방으로 퉁치기도 한다. 사실 한반도에서 가장 안습한 지역이다. 옛부터 중부 지방, 남부 지방보다도 기후가 매우 추웠고 지형 또한 험하니 유배지의 고장의 역할을 일삼아왔다. 심지어 이곳 출신의 이성계도 서북(평안도, 함경도) 출신들에게 벼슬을 주지 말라는 명이 있었다고 택리지에 실려있다. 세종 때 실시한 4군 6진 정책 이후 위에 언급된 유배지 역할로 자리잡게 되다보니 이곳 출신들과는 결혼은커녕 출세부터 걱정해야 됐고 까딱하면 농민으로의 전락을 걱정해야 했다. 그래서 일어난 사건이 [[홍경래의 난]]. 애초에 이런 식으로 차별하는데 죽창 안 드는 게 이상한 거다. 이걸로 [[조선]]이 망하고 [[일제시대]]가 시작되면서 자강운동이 활발했던 곳이 바로 북부 지방으로, 평안도는 아예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기독교의 세가 강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오력은 [[광복절|광복]] 이후 [[소련|웬 빨간 코쟁이 새끼들]]과 [[조선로동당|그 따까리들]]의 등장으로 모두 무산되었고 조선 시대에 겪은 그 좆같은 운명이 다시 부활해 현재 분단 시대까지 이르게 됐으며 현재 함경도 지역은 다시 유배지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북부지방 주민들은 평생을 돼지의 핍박을 받으며 살지 아님 목숨걸고 [[탈북]]을 해야될지라는 암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됐다. 아직도 국사 교과서에선 백제는 라도, 신라는 쌍도, 고구려는 북쪽, 이 정도로만 가르치고 있고 시끌시끌한 일도 남쪽에서만 일어나고 가끔 몽진을 해도 평양 찍고 의주 이렇게나 갔지, 북동쪽은 한번도 제대로 된 포커싱을 받아본 역사가 없다. 말 그대로 함흥차사라고. 그나마 있던 거라곤 [[고구려]] 다음으론 [[발해]]뿐인데 알다시피 존나 듣보잡 취급 받는다. 아무리 기록과 정보가 적어도 그렇지 엄연히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인데도 매우 듣보 취급을 받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야 [[중국|짱깨]]들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남북국시대'라고 통틀어서 불러주지 예전엔 그냥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면서 발해를 쩌리로 봤다. 아무리 분단으로 인해 지리적인 문제로 [[한국|남한]]은 신라, 백제, 가야를 더 중점적으로 보고 [[북괴]]는 고구려를 더 중점적으로 본다 쳐도 그렇지 발해는 진짜 한국사는 맞는지 싶을 정도로 쩌리로 취급해서 안타까울 다름이다. ㄴ 발해 역사 기록이 ㅈㄴ 적어서 문제다. 아무튼 이 정도로 북부 지방은 예나 지금이나 참 안습한 지역이다. ==== 관서 지방 ==== {{북괴}} 평안도.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에 관직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차별을 많이 받았던 곳이었고, 다른 지방과는 다르게 양반의 힘이 약한 대신, 상업이 크게 발달했던 곳이었다. 평양은 이때부터 짱깨 사신에게 대주는 기생 관광 같은 걸로 크게 번영했다. 분명 삼국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존나 잘 나가는 동네였는데 고려가 세워진 이후로 주도권을 경기도에 뺏긴 탓에 경기도에 대한 감정이 아주 안 좋았다. 구한말에는 서구로부터 기독교가 가장 먼저 전파되어서 그 영향이 아주 강했다. 성경도 평양 사투리로 번역된 버전이 있을 정도로. 일제강점기에는 틈만 나면 대륙을 공격할 각만 재던 좆본 덕분에 군수 산업, 공장이 키워지면서 잘 살았지만 일제가 좆망한 지금은 북괴의 수도가 되었다. ==== 관북 지방 ==== {{북괴}} 함경도. 철령관의 북쪽이라는 뜻이다. 평안도보다 더 많이 안습한 곳으로, 시베리아 뺨 날리는 혹한을 자랑하며 산도 많고 호랑이도 많아서 조선 시대까지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었다. 일제시대 때는 평안도와 마찬가지로 중국, 러시아가 접해서 공업 단지가 많이 조성된 덕분에 잘 살던 곳이었다. 강점기 말기에는 좆본이 발작하는 바람에 남면북양도 하고 쌀 생산량 늘린다고 (북부에서는 농사를 못 지으니) 비료 공장까지 지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서 각광 받았다. [[아오지 탄광|현재도 유배지]] [[청진시#청진 수용소|역할을 톡톡히]] [[요덕 수용소|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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