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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개태국에서 입헌군주제로 === 라마5세가 1910년 죽고난후 태국은 한동안 ㅈㄴ게 평화로웠다. 영국과 프랑스는 건드리지도않았고 제국주의 물결이 파동치는 시대에 태국의 안정적인 시대였다고 할수있다. 물론 라마5세가 호흡기달아놓고 시암을을 회생시켜놨으니 아들이었던 라마6세나 라마7세는 선왕을 하필 명군으로 둬서 ㅈㄴ게 먹고놀았다. 민비마냥 맨날 파티하고 놀고먹고하니 백성들은 빡칠수밖에;;; 결국 개화이후 근30년동안 잠잠했던 미개태국에서 왠일로 계몽사상을 내세우던 군부측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때부터 태국의 신랄한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 여러번의 쿠데타가없었으면 태국은 현재 한국보다 잘살지도모르나 경제개발을 주창하는 박정희같은 군인정치가가 안나타나는바람에 태국은 지금의 헬태국 헬보딸급의 국가로 좆망해버린다...''' 라마7세가 정치에 노관심인 사이 '''쁠랙 피분송크람'''이란 머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는다. 쁠랙 피분송크람은 대대로 군머집안이어서 사관학교로 들어가 공부하고 1차세계머전때는 헬프랑스로 입국하여 프랑스의 현대적 군사전력등을 배워오며 군의 엘리트로서 승승장구하게되고 1931년엔 대령으로 승진하게된다. 1932년 시암혁명 이른바 쿠데타를 일으켜 왕당파 군대를 분쇄시키고 방콕을장악한 후 왕궁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결국 국왕새끼는 거의 모든실권을 내려놓았고 드디어 태국에 최초의 입헌군주정이 들어서기시작했다. 시암의회는 1932년 말 유럽의 각나라의 헌법을 모방하여 법을만들었으며 시암에선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런헌법으로 인해 시암의 국왕이었던 라마7세의 권력은 나날히 실추해갔고 끠꺼솟한 왕은 계속 의회와 피분송크람내각에게 반발하다가 피분송크람의 반협박(?)및 해외망명 종용으로 1935년 왕궁에서 나온 라마7세는 영국으로 추방당하고 거기서 뒈짖한다. 왕자리가 비게되자 이참에 공화제로 돌아서자는 주장도 있었는데 워낙 미개한 헬태국의 노예근성상 왕제도를 없에버리는것은 전국의 반란이 일어날것이 뻔해서 스위스에서 유학중이던 젊은 라마8세를 태국으로 강제로 송환해 왕자리에 앉혔다. 물론 라마8세는 그냥 허수아비였고 실권은 모두 피분송크람에게 집중되있었다. (애초에 입헌군주제국가면 내각에 권력이 집중되있는건 당연지사.) 피분송크람 내각은 동북쪽에 위치한 개헬본좆국의 극우내각처럼 상당히 대국적이아니라 독재적이었는데 출판물과 방송등은 완전히 검열을 받았다. 아무도 송크람내각에게 반발할 세력이 없어진것이다. 송크람은 명목상 문민정부를 표방하고있어서 삐띠라는 정치인을 자신의2인자로 두고 서로 견제하며 정치를해나갔다. 물론 삐띠는 허수아비여서 그냥 송크람의 욕심대로 축출당한다. 자신은 평소 개헬본좆국의 도좆히데키나 히틀러 무솔리니등을 존경했었는데 그야말로 '''불지옥태국'''의 성립이다.1938년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여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을 찍어눌렀으며 화교계들이 바퀴벌레전통을 따라하려하자 태국식을 강요하며 화교계들을 강제추방 및 감금등으로 억압했었다. 그야말로 짱깨 킬러... '''1939년 국호를 시암에서 쁘라텟 타이(자유의 나라)로 바꿔서 지금까지 타이 또는 태국으로 불리고있다.''' 1940년 2차대전이 발발한지 1년이 되갔을때 개헬본좆국의 위대한 황군이 베트남을 점령하고 70만대군으로 동남아를 향해 진군해오자 일뽕,독뽕이었던 송크람은 그즉시 추축국에 가입해 같이 프랑스와 영국을 조지는데 도와준다. 1941년 태국의회에 국토회복계획을 제출하여 일본과함께 전쟁을 수행해나가자는 내용으로 일본군의 미얀마진군을 허락해주고 또 영국으로부터 헬본의 해군으로 방어를 하게되어 태국은 헬본의 버스를타며 승승장구하나 싶더니;;;; 결국 좆본은 원자폭탄으로 항복해버리고 '''이에놀란 의회와 군부는 연합국에대한 태도를 180도 바꿔 송크람을 즉각축출'''하고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동남아로 다시 돌아오는것을 방해하지않는다는 조건으로 패전국의 반열에 오르지않게되었다. 역시 눈치는 좆되게빠른 타이 ㅍㅌㅊ? 그러나 전후 문제가 끝난후 1946년 도쿄극동군사재판이 한창이던때에 좆본의 수장들은 차례차례 모가지가 메달려 뒤지고있었지만 개씹새끼 송크람은 용케도 안뒤지고 그냥 가택연금만 당하다가 1946년 6월 라마8세가 총기사고로 끔살되자 혼란한 정국을 수습한답시고 자기와 뜻을같이하는 극우장교단을 몰래 모아서 비밀리에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물론 미국은 송크람을 군사재판에 회부하지않았는데 그이유는 상당히 반공적인 인물이어서 공산주의가 당시 동남아를향해 빠른속도로 퍼지고있었고 태국은 동남아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다보니까 미국도 송크람이 싫지만 공산주의 물결을 막기위해서 어쩔수없이 무기며 재정이며 지원을 해주었고 송크람은 이것을 발판삼아 1957년 9월까지 독재를 펼쳤다... 쿠바의 우익독재자 바티스타를 보는것같다. '''1957년 사릿타나랏이라는 군인이 부정부패를 문제삼아 국민의 지지를 얻고 쿠데타를 일으켜 또 축출당해버리고 일본으로 망명가서''' 1964년 일본에서 뒤짖한다. 역시 극우한마당 좆본 ㅍ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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