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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등 == 오기가 서하에서 14년을 맞던 해에 문후가 서거했다. 그는 50년을 다스리면서 위나라를 세우고 전국칠웅중 하나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기 역시 도성을 바라보며 사흘 밤낮을 슬퍼했다. 문후의 뒤를 이어 무후(武侯)가 즉위했다. 무후는 똑똑하고 경험도 많아서 엘리트긴 했지만 성품이 과격하고 덕(德)이 모자랐다. 게다가 이극과 적황 등 훌륭한 신하들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 따라서 무후는 폭군이 될 수도 있었다. 가을 어느날, 무후가 서하로 순행(巡幸)을 왔다. 강에 배를 띄우고 술을 마시며 무후가 흥에 겨워 중얼거렸다. "이 험준한 지형과 아름다운 경치는 정말 일품이구려. 이것이 위나라의 보배가 아니겠소?" 그러자 따라온 왕착(王錯)이란 신하가 맞창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이 서하가 있는 한 위나라는 안전할 것입니다." "그대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가!" 오기가 왕착에게 소리쳤다. 그러고 무후에게 돌아 공손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라의 보배는 군주의 덕이지 산하(山河)의 험준함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삼묘씨(三苗氏)는 왼쪽으로 동정호(洞庭湖), 오른쪽으로 팽려호(彭蠡湖)를 가졌지만 정치를 하지 않아 우(禹)에게 멸망당했고 하(夏)의 걸왕(桀王)도 사방으로 황하(黃河)와 제수(濟水), 태산(泰山)과 화산(華山), 이궐(伊闕)<ref>낙양 남쪽에 있는 협곡인데, 나중에 여기서 백기가 한 위 연합군 24만명을 상대로 대 학살쇼를 벌인다.</ref>과 양장(羊腸)등의 지세를 가졌지만 폭정으로 탕(walter)에게 쫒겨났습니다. 또한 은(殷)의 주왕(紂王)역시 맹문산(孟門山)과 태항산(太行山), 상산(常山)과 황하를 끼고도 부덕했기 때문에 주(周)의 무왕(武王)에게 피살된 것입니다. 이런 전례를 보더라도 주군이 덕정을 펼치지 않으면 이 배에 탄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될 것입니다." 아오 한자쓰기 힘들어 이 말을 들은 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돌아가 버렸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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