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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중국]] 북부 [[내몽골 자치구]]의 성도이다. [[바오터우]]에서 서쪽으로 150km, [[다퉁]]에서 서북으로 120km 떨어진 평원에 위치해 있고 인구는 290만 명이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호흐호트(Hothot)로 [[몽골어]]로 '푸른 도시'라는 뜻이다. 후허하오터는 중국식 발음이다. [[왕소군]]의 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흉노]] 때부터 도시가 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나라]]의 군현제 당시에는 운중군(雲中郡)으로 칭하였으나 실제적으로는 흉노 세력권이었으며 한 군현은 사실 흉노를 통제하고자 설치한 명목상의 것일 뿐이었다. 내몽골 남부 열하 지역의 바오터우<ref>[[몽골어]]로는 부가트</ref> 등 [[만리장성]] 주변 지역들이야 한족들이 실제로 이주해 살았으나<ref>[[삼국지연의]]에도 나오는 그 [[여포]]가 바오터우 인근 사람이다. 물론 그는 흉노족이 아니다.</ref> 척박한 이 지역은 흉노의 세력권일 뿐이었다. 이후 [[한무제]] 때 [[곽거병]]이 북방 원정을 단행하면서 [[외몽골]]과 [[시베리아]] 남부 등과 함께 이 지역도 정복했는데 이 때 [[바이칼 호]]까지 갔었다. 이후에는 [[유연]]의 세력권이었다 유연이 [[외몽골]] 서부 알타이에서 기원한 같은 몽골계인 [[튀르크]] 즉 돌궐에 멸망하며 이 지역은 돌궐의 영역이 된다. 돌궐은 내몽골은 물론 외몽골과 바이칼, 예니세이 일대를 주축으로 서쪽으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쪽으로는 [[바이칼 호]]와 대흥안령에 이르는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후 동서 돌궐로 분열되었다 [[당나라]]에 동돌궐이, 그리고 [[위구르 제국]]에 서돌궐이 망한 후 다시 내몽골은 돌궐의 적대부족인 철륵 부족이 소그드인과 혼혈된 [[황백혼혈]] 위구르인에 의해 세워진 [[위구르 제국]] 통치권에 들어간다. 돌궐과 위구르 둘 다 유목민이었으나 위구르는 소그드인에 의해 [[마니교]]를 받아들이며 정착생활을 하여 유목민적 색체를 잃었고 곧 [[탄저병]]의 유행으로 자멸했으며 탄저균 때문에 이 지역에는 나중에 위구르를 대신해 몽골에 들어온 [[키르기스인]]들도 발을 못 들였고 그 틈을 타 [[바이칼 호]]와 만주 북부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키아트 족이라는 종족, 즉 오늘날의 [[몽골인]]들이 내려와 오논 강 유역, 바이칼 호 연안, 대흥안령과 함께 자신들의 터전으로 삼는다. 이때 나온 사람이 그 유명한 [[칭기즈 칸]]이며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내몽골 일대에서 놀던 원시 [[타타르]]를 절멸시킨 후 몽골에 복속시키고 더 나아가 외몽골 정복으로 케레이트와 나이만, 오이라트, 메르키트 등 수많은 종족을 몽골에 편입시킨다. 이후 [[한족]]이 [[명나라]]를 세운 뒤에도 내몽골 전체는 북원이 남아 있어서 독립적인 [[몽골인]]의 땅이었다. 이 도시로 돌아가서 이 도시의 기원은 [[몽골 제국]]과 [[원나라]]를 계승한 [[북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중엽 [[북원]]의 [[알탄 칸]]에 의해 지어진 구시가지는 귀화성(歸化城)<ref>이는 망명한 한족 귀순자들을 위해 조성되어 이름 붙여졌기 때문이다.</ref>, [[청나라]] 대에 지어진 신시가지는 수원성(綏遠城)으로 불렸는데, 이 두 지명이 합쳐져 귀수(歸綏), 즉 구이쑤이로 불렸다. 애초 사막 한가운데 척박한 지역이라 한족이 원래 살지 않았으나 알탄 칸이 대원제국의 부활을 외치고 스스로를 중국 천자 자리를 되찾겠다고 선언하며 [[베이징]]을 포위하는 경술의 변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산서성]], [[허베이성]] 일부를 수복, 이 지역 한족들을 내몽골로 이주시킨 후 한족식 도시를 만든 게 귀수성이었다. 그 덕분에 내몽골 외곽인 엘렌호트 등과 달리 호흐호트는 원래부터 한족이 더 많았다. 사실 유목민인 몽골인에게 도시는 아직도 낯선 것이었고 서쪽으로 간 몽골 제국 후예들인 [[킵차크 칸국]], [[차가타이 칸국]]과 [[일 칸국]] 등은 먼저 도시를 만들었던 동계 유목민족인 페르시아화된 [[튀르크]]인, 즉 현재 [[우즈베크인]]들에 동화되어 이슬람/ 튀르크화되었고 동쪽의 몽골 본진인 [[원나라]]는 [[중국 대륙]]을 통일한 후 대칸이 중국 황제를 선포한 식이었으며 도시는 페르시아나 중국 등 정주 문명인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다. 이후 [[만주족]]의 [[청나라]]가 혼인동맹으로 만주-몽골을 일체화하자 이 지역은 당시 후금이라 불리던 청나라에 편입되며 [[만리장성]] 방면으로 중국을 쳐들어가는 기점이 된다. 청의 지배 후에는 [[중화민국]]의 차하르성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만든 내몽골자치구의 수부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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