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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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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휘는 '호' 애비가 지금도 야리돌림 성능 오지게 돌아가는 그 유명한 [[능양군]]인데 의외로 양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꽤 괜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능양군 이 쓰레기새끼가 그래도 소현세자랑 효종이라는 자식은 잘낳았다. 충분히 명군 평가를 받을만한 군주. ㄴ 어떻게 멍청한 애비에게서 이런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게 가능한지 그중에 한 자식은 직접 골로보내고 며느리랑 손자도 죽인 쓰레기새끼지만 아무튼 둘째아들도 괜찮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능양군 상병신 새끼가 뒈질때 [[김자점]] 말 잘 들어라~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하고 갔지만 말끔히 씹고 왕따시켰다. 결국 [[김자점]] 새끼는 역모를 일으켰으니 인조 새끼 눈깔은 역시 상병신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예라 하겠다. 교과서에서 북벌을 계획했다고 빨아주나 헬조선놈답게 계획만 세우지 실행은 하지 않는다. 북벌 자체의 목적이 지 왕권 강화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때 북벌론은 가능성이 아예 없고 외치는 놈들 대다수가 자기 권력유지와 실책 떠넘기기 바쁜놈들이였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증거는 만의 군사를 목표로 준비하지만 고작 준비된 군사는 2천명 남짓. 그래도 나름 훈련은 잘 시켜서 질은 괜찮았는데 그 군사는 청의 나선정벌에 이용된다. 결국 복수를 위해 갈았던 칼로 원수를 도와준 셈. 애초에 복수도 불가능했지만. 하지만 서인(송시열등)들이 정권유지를 목적으로 북벌하자는 폼만 취했던 것과 다르게 효종은 진지하게 청을 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ㄴ 솔직히 청을 칠 생각은 없었다고 본다. 얘가 왕자 시절에 형이랑 같이 인질로 끌려가서 강력한 청나라가 명나라 박살내는거 직관하고 온놈이다. 그리고 대부분 군사강화 부문을 보면 공격이 아닌 방어에 중점을 두었다. 북벌은 산림(서인)을 자신의 편에 들게해 정통성(효종은 정통성 콤플렉스가 심했다.)을 공고히 할려하는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기야 뭐 진짜로 북벌하겠다고 당시 한창 전성기였던 청나라, 그것도 [[강희제]]한테 깝쳤다간 자기 아버지 답습해서 삼전도비 하나 더 세우는걸로 안끝나고 그대로 좃선 멸망 엔딩으로 가버릴 가능성이 100% 였으니 안한게 잘 한 거긴 하다. 이는 실제로 이루어진 북벌 계획이 성곽보수나 군사체계 정비등 방어적인 부분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현대 [[국민의힘]]이 사용하는 [[북풍]] 혹은 [[민주당]]이 이용해먹는 [[반미]] 같은 거라 생각해라. 당시 국민들이 청나라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국왕이 "씨발 청나라 족치자~!" 라고 하면 좋다고 호응했겠지. 물론 이게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것 같았으면 청나라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충 내치를 위해 써먹는구나~ 싶어서 눈감아줬던 것이라 판단할 수 있겠다. 청나라는 다른 일로 바쁘기도 했었고. 북벌은 안 했고 대신 청나라를 도와 불곰국을 두번이나 쳤다. 흔히 [[나선정벌|나선정벌]]이라고 하는 그것. 단, 이 때의 청나라는 명나라같은 병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광해군때완 다르게 병력만 말아먹고 오진 않았다. ㄴ 불곰국과 싸웠던 청나라 군대는 병신들 맞았다. 병신이 아닌 청나라 군대는 남명과 싸우고 있었기에 빼올 수 없어서 후방의 만주군으로 덤비다 깨지니까 조선군을 불러온 것. 물론 조선 입장에선 전혀 이득 없는 원정이었으나 인조 새끼가 조선을 청나라에 팔아먹은지 오래였기에 조선은 별 수 없이 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여튼 씨발 새끼 살아있을 때나 사후에나 민폐 쩐다. 그래도 인조보단 훨씬 나았기에 김육이나 이완등 그나마 좀 쓸만한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다. 신기한게 인조때는 인재가 없어 버버버댔는데 효종땐 어디선가 슬금슬금 인재가 모인 걸로 봐선 역시 조선에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조 새끼가 문제였다는걸 알 수 있다. 묘호답게 효심이 뛰어나다. 그래서 [[능양군]]도 인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ㄴ진짜면 효자도 이런 효자가 따로없다. ㄴ진짜다 처음엔 신하들이 열조(삼국지 유비의 묘호)를 추천했으나 빠꾸먹고 인종은 이미있으니 인조 만한게 없다고 신하들이 후빨하자 효종이 눈물 겨워하며 인조로 정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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