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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 속 사건== [[파일:카트린 드 메디시스.jpeg|800픽셀]] 1572년 8월 24일 파리에서 프랑스 왕의 여동생 마르그리트와 나바르의 앙리의 결혼식을 계기로 터진 학살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는 신교와 구교 간의 갈등이 극심했는데 신교세력의 지도자는 프랑스 남부의 소왕국 나바르의 앙리였다. (나중에 프랑스왕이되어서,앙리4세가됨) 신교와 구교의 갈등은 무력충돌을 여러번 일으켰고, 외국세력을 끌어들일 정도였다. 이런 갈등을 봉합하기위해 프랑스 왕 샤를 9세와 모후 카트린 드 메디시스(메디치)는 여동생/딸인 마르그리트를 신교대장인 앙리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프랑스 왕이니깐 당연히 구교대장이다. 다만 이때 실질적인 추진력은 프랑스 왕가보다는 기즈 공작 앙리가 내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위해 신교측 주요인물들을 다 데리고 와서 파리에 묵었는데, 신교측 지도자급 인물의 한명인 콜리니가 누군가의 암살시도에 의해 부상을 당한다. 오히려 신구교간 갈등이 고조되었다. 기즈 공작은 이렇게 되자 선수를 치는게 낫다고 생각하고 샤를 9세를 설득해 신교도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며 파리에 머문 신교도들을 다 죽이자고 한다. 참 파리의 주민들은 구교파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해서 파리의 구교들은 전부 무장하고 신교도들을 습격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파리의 성문은 전부 봉쇄됐고 교회 종소리를 시작으로 학살이 시작됐다. 신랑 나바르의 앙리를 따라온 신교도들은 물론이고 파리에 살던 신교도들도 집이나 상점이 불태워지고 약탈당하고 가장뿐만 아니라 아내나 아기들도 살해당했다. 파리에서 시작된 이 학살은 전국각지에 구교가 메이저인 도시들에도 퍼져 총 3만~7만사이의 신교도가 학살되었다고 추정된다. 신랑 나바르의 앙리는 붙잡혀서 개종할것인지,그냥 뒤질것인지 선택하라고 해서 개종하겠다고 하고 감금당한다. 스포지만 나중에 도망친다. [[분류:유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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