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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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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입장에서 본 포클랜드 전쟁== 마거릿 대처 수상이 일으킨 영국의 전쟁으로 아르헨티나가 중진국에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계기가 된 사건이다 ㄴ아르헨티나가 중진국이었다는 것은 개소리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만큼 경제적으로도 부강하였으며 당시 국내의 정치적 불안을 돌리고자 이용했던게 포클랜드였다. 당시 영국이 조온나 힘들었으니까 만만해보였나봄ㅋ ㄴㄴ아르헨티나는 19세기 남미독립전쟁 이후로는 단 한번도 남미의 최강국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의 존재만으로도 아르헨티나가 군부독재이전까지는 남미의 최강국인 것이 증거다. 아르헨티나까는 거의 대부분 세계사알못인데 브라질이 1825년에 아르헨티나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 그래서 브라질은 힘이 없어서 아르헨티나에게 쩔쩔맸기 때문에 우루과이가 독립에 성공한 건 알고 있는지. 브라질이 아르헨티나가 무서워서 쩔쩔매고 아르헨티나에게 울면서 잘못했다고 굽실거렸던 것은 1830년에 있었던 명백한 사실이다. 오죽하면 브라질 제국의 국왕이 10살도 안된 아들 남기고 포르투갈로 도망가버릴 정도였다. 이정도로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무서워했으며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만 못한 나라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그래서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있는 거다. 국토방위를 해야 하는 축구국이 포클랜드의 반환을 요구하고 땅 욕심이 극에 달하는 해적깡패 영국은 그걸 씹고 전쟁을 터트렸다 영국군은 기후와 여러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했고 아르헨티나는 언덕만 지킬 생각을 했으므로 당연히 유리한건 영국군이었다 결국 74일 만에 아르헨티나가 좆털리고 항복을 했다 정신력만으론 안된다지만 때로는 필요하단걸 잘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는 개소리. 객관적 전력과 상황으로만 봐도 영국이 이길 전쟁이었고 정신력은 하등 관계 없다. ㄴㄴ는 개소리. 객관적 전력과 상황으로만 봐도 아르헨티나가 이길 전쟁이었고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결과가 난 전쟁이다. 영국은 일단 규모를 떠나 보급에 문제가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세인트헬레나 / 어센션 / 트리스탄다쿠냐 군도에 전초기지를 세웠는데 이렇게 해도 '''물자 및 병력운송이 세월아 네월아'''였다. 그러니까 바로바로 조달되는 아르헨티나와는 달리 영국은 한번 물자를 소모하면 언제 보급이 올지 까마득한 상황이라 이기야. 전략적으로는 상병신같아도 역시 항모있는 군대랑 없는 군대랑 싸우면 항모있는 군대가 이긴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아르헨티나의 엑조세 대함미사일이 영국 군함을 능욕하는일이 일어나서 해상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ㄴ 는 개소리. 아르헨티나는 베인티싱코 데 마요호라는 항공모함이 있었는데 경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가 hms 컨커러한테 격침되자마자 해군을 봉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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