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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 기관단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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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진지주의}} ===새롭게 개척한 역사=== 미국 병기국에서 근무하던 '존 T. 톰슨(John T. Thompson)' 예비역 준장은 전쟁 이전부터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전선의 상황을 접하고 1917년부터 기관단총 제작에 들어갔는데 종전 후인 1919년에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총은 비록 때를 놓쳐 뒤늦게 등장했지만 다음 전쟁에서 미군 병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관단총으로 명성을 얻었다. 바로 톰슨 기관단총(Thompson Submachine gun)이다. 최초의 기관단총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기관단총의 기능을 처음 구현한 것은 이탈리아의 ''빌라-페로사(Villar-Perosa)'',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기관단총은 독일의 ''MP18''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톰슨 또한 기관단총의 역사에서 결코 떼어놓을 수 없다. '''톰슨은 '기관단총'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을 뿐 아니라 20세기 후반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애용된 걸작이다. 톤슨도 여타 기관단총처럼 권총탄을 사용했다. 현재도 사용 중인 콘트 사의 [[M1911]]권총용 .45 ACP탄(11.43 x 23mm)을 이용했는데, 유효사거리가 100~150미터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50미터가 넘으면 명중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한마디로 얼굴을 알아 볼 수 있는 상대에게나 사용할 수 있던 초근거리 무기였다. [[기관단총]]은 작동 원리상 [[기관총]]과 같았는데 ''존 톰슨''은 당시 기관총의 고질적 문제인 엄청난 무게를 줄이는데 고심했다. 당시 자동화기들은 크게 리코일, 가스작동, 블로우백 방식을 사용했다. 톰슨은 구조가 간단한 블로우백 방식이 소형 자동화기에 적합하다고 결론지어 그 중에서도 당시 새롭게 등장한 ''블리시 록'' 기술을 접목한 블로우백 방식을 최초로 사용했다. 한마디로 실전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신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기관단총이었다. 이런 톰슨 기관단총의 고질적인 단점은 기관단총답지 않은 무거운 무게였다. 탄창을 제외하고도 무게가 5킬로그램 가까이 되었다. 2차대전 당시 톰슨과 더불어 전선을 누빈 [[독일]]의 [[MP40]]이나 [[소련]]의 [[PPSh-41]]이 4킬로그램 이하였던 점을 생각해보면, 톰슨의 무게가 상대적으로 많이 나갔음을 알 수 있다. ===엉뚱하게 얻은 명성=== 이렇게 탄생한 최초의 톰슨 기관단총은 단 40정만 시험 생산된 M1919였다. 처음 군부대에서 사격 시범을 보였을 때 분당 1,500발의 엄청난 발사속도를 자랑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지만, 정작 전쟁을 막 끝낸 군 당국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선 전쟁 막바지에 참전한 [[미군]]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참호전]] 경험이 짧아 기관단총을 목말라 하지 않았고 거기에다가 납품가가 너무 고가였다. 볼트액션 소총에 비해 복잡한 구조와 쇠를 일일이 깎아서 만든 제작 공정은 어쩔 수 없이 가격의 상승을 불러왔고, 그로인해 일선 보병들에게 충분히 공급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결국 자칫하면 톰슨은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흐지부지 사라질 수도 있는 운명이었다. ''오토-오드넌스''라는 총기 제작사까지 차린 ''존 톰슨''은 군납이 좌절되자 민간 판매를 고려했다. 1921년, M1919를 개량한 M1921을 민간에 판매했는데 엉뚱하게도 갱들이 톰슨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았다. 이전에 갱들은 마치 서부개척 시대처럼 권총이나 산탄총 같은 고전적인 무기를 주로 사용했다. 바로 이때 엄청난 속도로 난사할 수 있는 톰슨의 등장은 한마디로 혁명이었다. 대부분 근접전인 갱들간 싸움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많은 탄환을 날려버리는 쪽이 절대 유리했다. 1927년 [[알 카포네]] 가 이끄는 갱단이 톰슨을 앞세워 상대 조직을 무참히 제거하면서 유명세가 하늘을 찔렀다. 더불어 갱들은 톰슨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체 개량에 나섰는데 대표적인 것이 연사 시 반동을 줄여주기 위해 장착한 ''컴펜세이터''였다. 톰슨 기관단총을 소지한 갱들은 목표에 난사하자마자 현장을 이탈하는 공격 형태를 보였는데 생각보다 명줄률이 높지 않았다. 금주법 시대에 시카고 밀주 사업을 놓고 경쟁을 벌이던 [[프랭크 맥클레인]]이 [[루카스 오도넬]]을 제거하려 바로 앞에서 톰슨으로 70여발을 갈겼는데 모두 빗나가는 경우까지 생겼을 정도이다. 톰슨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컴펜세이터가 이런 웃지 못할 이유 때문에 탄생한 것이다. 드럼 탄창이 특징적인 M1921은 총소리가 타자기 소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시카고 타자기]](Chicago Typewriter)'또는 제작자 이름을 따서'토미건(Tommy Gun)'이라 불리며 1920~1930년대 갱의 상징이 되었다. [[대부]]같은 영화에서도 소품으로 등장하면서 이후 '톰슨'하면 제일 먼저 갱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안 개발자 존 톰슨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 몹시 분노했다고 한다. 조국의 수호라는 일념하에 [[AK-47]]이라는 기념비적 총을 만들어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각종 테러단체들이 [[AK-47]]을 애용하는 모습에 실망한 것과 같은 경우였다. 어쨌든 이처럼 민간에도 판매하고 대외 수출에도 나섰지만 가장 커다란 시장인 군 당국에 납품 시도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기회=== 1923년에 새로운 ''.45 레밍턴-톰슨탄''을 사용하여 화력과 사거리를 늘리고 멜빵, 대검을 장착할 수 있도록 개량된 모델을 육군에 제안했지만 이번에도 소총을 선호하던 보수적인 군부의 결정으로 제식화기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품은 어디가도 빛이 나듯이 드디어 1928년에 개량된 모델인 M1928 일부 물량을 1930년 미 해군과 해병대가 정식으로 채용하면서 본격적인 신화가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무거운 것이 단점이었던 톰슨은 M1928부터 오히려 무게가 더 늘었는데 그 이유는 발사속도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약간 속도를 줄이면 정확도와 조작성이 향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해 노리쇠 뭉치의 왕복거리를 늘이거나 무게를 무겁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톰슨은 무게를 늘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국이 참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톰슨은 미국의 참전 이전에 영국과 중국 등에 제공할 목적으로 이미 대량생산되고 있던 중이었다. 이처럼 명성을 얻고 있었던 톰슨은 정식 군용 제식부호가 M1([[M1 개런드]] 소총과 다름)이었는데 제작 공정과 단가를 줄이기 위해 이 모델부터 작동방식이 단순 블로우백 방식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일반 탄창만 사용할 수 있는 등의 일부 개량이 이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대량생산과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전쟁에 사용되기 위한 가장 적합한 형태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1943년부터 개량형인 M1A1이 사용되었는데 교전 중 [[종군기자]]가 사진에 찍은 대부분의 톰슨이 바로 이것이다. M1A1 모델은 톰슨의 최종형이고 이후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시대를 대표한 기관단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톰슨은 주력 화기가 아니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의 표준 화기는 [[M1 개런드]]였고 [[M1 카빈]]이 보조 화기로 활용되었다. 아무리 연사력이 좋다고 하여도 사거리가 짧고 파괴력이 약한 기관단총의 한계가 있었기에 톰슨은 근접전에 특화된 무기로만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소대장이나 분대장 같은 일선 지휘관이나 정찰대 같이 경무장이 필요한 사병들이 주로 사용했다. ''오토-오드넌스''에서 제작되던 톰슨은 전쟁이 발발하며 공급 물량이 모자라자 [[콜트]]를 비롯한 여러 회사에서 라이선스 생산되었다. 이들 제작사를 통하여 총 170만 정이 생산되었는데 [[미군]]의 주력 화기였던 [[M1 개런드]] 소총이 약 625만 정, [[2차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관단총인 [[독일]]의 [[MP40]]이 약 100만정 생산된 점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량임을 알 수 있다. 톰슨은 [[미군]] 외에 여러 [[연합군]]에 공여되었는데 이때 [[소련]]이나 [[중국]]에 흘러들어간 일부 물량을 6.25전쟁 당시에 공산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야간 전투 시 같은 총소리로 망미암아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자, 미군은 톰슨의 사용을 금지하고 [[M3 그리스건]]을 사용하게 되었다. [[2차대전]]말기에 등장한 [[M3 그리스건]]은 생산비나 제작시간 등에서 톰슨보다 유리하여 점진적으로 대체되던 중이었다. 제식 채용된 톰슨 기관단총의 생산 비용이 45달러(2017년 기준으로 641달러, 한화로 70만원)인 반면에 M3 기관단총은 15달러(2017년 기준으로 214달러, 한화로 23만원 밖에 안했다. 심지어 톰슨 제식 채용 초기에는 209달러, 2017년 기준으로 2,979달러다. 즉 한화로 327만원이다. 즉 톰슨 하나 만들 돈으로 그리스건 3개 혹은 14개 정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절삭 가공으로 생산되고 구조가 복잡한 톰슨과 달리, M3 기관단총은 처음부터 생산성 위주로 설계한데다 프레스 가공으로 만들어져서 생산 시간이 짧았다. 한국군도 켈로부대 같은 비정규전 부대에서 소수 사용 했다. 유엔군이었던 터키군도 초기에 자국에서 사용하던 톰슨을 들고 오기도 했다. 톰슨은 처음부터 전선의 경험과 필요에 의하여 탄생하였고 거대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맹활약하던 미국의 대표적인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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