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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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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한 소개 ==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전차전''' '''전투 11일 간 양측 사상자 약 100만명''' 월오탱 실사판을 찍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플레이 요금은 플레이어 목숨^^ 양측 합쳐서 병력 200만, 전차 6500대, 항공기 4500대가 동원된 스케일 초지리는 전투이다. 태평양 전선이 [[미드웨이 해전|미드웨이]] - [[과달카날 전투|과달카날]] 콤보 이후로 천조국이 승기를 잡앗다면, 소련 전선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스탈린그라드]] - 쿠르스크 콤보로 전세가 그대로 소련 승리로 굳어진다. [[4호 전차]],[[티거]]같은 덕국 땅크들과 [[T-34]],[[KV]]같은 쏘오련 땅크들이 대판 박고박힌 전투이다. 일단 독일이 소련에게 큰 손실을 안겼다. 그러나 독일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연합군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 상륙해서 공격을 중단하고 군대를 빼야만 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련이 뒤통수를 후렸고, 결국 독일은 우크라이나에서 쫓겨나고 만다. 참고로 그당시 쿠르스크 지역의 전선은 툭 튀어 나와있던 돌출부였다. 독일군이 툭 튀어 나온 쿠르스크를 포위하기위해 사방에서 공격한 전투이다. 소련군 방어선은 중심부에서 외곽까지 대략 100km정도 됬다고 함. 정확하게 아는 사람 수정 바람. 그리고 원래 기습으로 칠려했는데 독일군 병사하나가 소련군한테 잡혀서 독일이 선제빵당했다. ㄴ 사실 아프베어가 이 시기에는 거의 병신이 돼서 시타델 작전 관련 정보가 줄줄 새나갔다. 그리고 소련이 선제빵을 날렸으나 병신 같은 낙지의 운송능력으로 인해 공세 시작점에는 도달도 못 한 부대가 대다수여서 피해를 별로 입지 않았다. 이런 병신들... 결과는 독일이 더 이상 공세를 유지할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채 베를린까지 쭉쭉 밀림. 한마디로 소련이 독일군을 영토에서 몰아내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독일 본토로 역관광까지 가게 된 계기가 된 전투이다. 하르코프에서 다시 소련한테 한 방 먹이긴 했지만 이미 소련에 넘어간 공세주도권을 빼았아 올 수는 없었다. === 상세 === 42~43년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완전히 말아먹은 독일은 이미 가망이 없던 청색작전을 접으며 부랴부랴 전선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소련은 르제프 전역에서 거하게 말아먹었지만 천왕성 작전을 성공시키며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하고 있었고, 토성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 외곽의 독일군을 밀어버리며 승기를 굳히고 있었다. <br>그러자 스탈린은 물론이고 스타브카까지 낙관론에 빠져서는 이참에 남쪽에서 쭉 밀어서 전선에 구멍을 뚫고 이를 이용해서 골칫거리인 독일 중부집단군을 잡자! 하면서 별 작전을 개시했고, 소련군은 공격을 개시하는데 이게 바로 위에 잠깐 언급된 하르코프 공방전이다. 정확히는 3차 하르코프 공방전. <br>독일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야전군 하나 말아먹고 공세를 중단했다지만 아직 건재한 상황이었는데 소련은 대책없는 낙관론속에 이참에 다 잡아버리자했고, 독일은 만슈타인의 지휘하에 소련군의 주력을 하르코프 깊숙히 끌어들여서 역으로 잡아버린다. 그리고 하르코프의 주도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소련군은 또다시 50여개의 사단이 공중분해되는 병신력을 발휘하며 전쟁의 무게추를 어느정도 중간으로 돌려버렸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하르코프를 독일이 먹으면서 북쪽 중부전역에 거대한 돌출부가 구성되는데, 이게 바로 쿠르스크였다. <br> <br> 43년을 여름 독일의 새로운 공세는 이전과는 달리 아주 수비적인 목적의 공세로 계획되었고, 그 목표는 쿠르스크였다. 독일의 전략적 목표는 쿠르스크 돌출부를 위아래에서 치고 들어가 포위해 짤라버리고, 이 과정에서 소련군을 최대한 많이 포위 섬멸하는 전형적인 방식이었다. 즉, 적의 물리적 섬멸을 추구하는 아주 정석적인 독일군의 작전이었다. 덤으로 길게 늘어진 전선을 줄여서 독일군에게 가해지는 중압감도 덜고자하는 의미도 있었다. '바르바로사 작전 - 소련박살' -> '청색 작전 - 자원먹고 소련박살' -> '성채 작전 - 소련군 최대한 줄이고 막자'로 이어지는 낙지 좆망 스토리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br>여튼 이 시점에 소련군의 정보력은 이미 절정에 다다라서 독일군의 공세예측지점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즉 바르바로사때 우크라이나 지킨다고 중부전역 고속도로 뚫어주고, 청색 작전때 모스크바 지키다가 남쪽에 고속도로 뚫어준 병신짓을 하지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br>에리히 만슈타인은 하르코프의 승리 이후 이 기세를 몰아서 남부집단군이 북쪽으로 공세를 펼치면서 동시에 중부집단군을 남진시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반면 구머리는 지금은 공격하기 좋지 않은 시기라고 반대하기는 했지만 독일이 보기에 이전에 대패를 당한 소련은 비틀비틀거리고 있었고 이참에 한방 더 먹이는 쪽으로 결정되고 히틀러는 만슈타인의 구상을 받아들여 쿠르트 자이츨러 참모총장에게 세부적인 계획을 맡긴다. 만슈타인은 이게 즉시 공격을 주장했지만 해빙기의 지랄맡는 진흙탕으로 도저히 공세를 펼칠 상황이 아니었기에 땅이 마르는 여름까지 공세를 미루는 한편 최대한 전력을 긁어모으기 시작한다. <br>한편 소련군도 스탈린이 조급증을 이기지못하고 쿠르스크 돌출부가 거슬렸는지 여기서 공세를 시작해 남쪽이던 북쪽이던 치고들어가자고 스타브카를 갈궈댔고, 만약 여기서 스탈린의 땡깡대로 소련군이 먼저 들어갔다면 소련은 좆망이었을것이다. 그러나 히틀러를 못이긴 낙지장군들과 달리 스타브카의 지휘관들은 스탈린의 땡깡질을 열심히 설득해서 막았고, 스탈린도 자기가 뭐 하자고 하면 죄다 말아먹은게 많아서인지 슬금슬금 물러나서 독일군의 공세를 막고 카운터치자는 쪽으로 정리가 된다. <br> <br>일단 정리되자 소련은 쿠르스크에 공격이 올게 뻔하니 이곳에 우주방어를 치기 시작했다. 소련군 특유의 종심방어를 수행하기 위해서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갈려들어가서(일례로 전선에 방대한 대전차호 구축을위해 민간인 30만명을 동원) 170km가 넘는 길이에 6중 방어선을 구축한다. 거기에 소련군은 60만에 다다르는 두개 전선군을 밀어넣고, 예비병력과 보조전력을 포함해서 인력만 170만명을 쿠르스크 일대에 배치했다. <br>독일도 가만히 있진 않았고 후방의 공장들을 미친듯이 돌리고, 타 전선의 잉여전력을 재편하는 등 성채작전을 위한 전력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작전개시 즈음에는 90만명에 달하는 인력을 배치했다. 양측의 기갑전력도 상당해서 독일은 2700여대, 소련은 3600여대의 자주포와 전차 등 기갑차량을 한큐에 모았다. 양측 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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