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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파일:철종.jpg|250px]]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명은 '강화도령' 한국사 전근대사에서 마지막으로 영접하실 왕. 다음 왕인 고종부터는 근현대사로 접어든다. [[세도정치|안동 김씨]]가 [[바지사장]]으로 데려온 대왕. 조선 왕조 최고의 [[바지사장]]님이시다. 얘 조상이 왕족인데 반란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강화도에 귀양가서 평민으로 신분 강등되고 그렇게 존나 고생해서 그런지 백성들 삶에 관심이 좀 있던거 같지만, 아는 것도 없고 힘도 없는 바지사장이라 권력도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좀 해보려다가 안되니까 나중엔 결국 술과 섹스만 탐닉했다고 한다. +원래 색에 환장한 인간은 아니다. 사실은 존나 순정파 흙 파먹던 시절 천한 여인를 사모했고 실제로 그 천한 여인을 궁궐로 불러들여 "난 백성 시절 때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다. 지금 너를 보니 매우 기쁘군! 내 아내가 되어주겠나?"라며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 천한 여인이 "전하, 저같은 천민이 어떻게 전하랑 결혼을 합니까!"라고 강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아내로 삼지 못했다고 한다. [[유희관]] 닮은 어진도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그려 외척세력이 임금의 권위를 낮춰 보려 했다는 썰도 있다. 가끔 [[고종]]을 이 양반과 같은 케이스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고종은 대원군이 밀려난 이후엔 실권이 무지막지했다. 특히 을사조약 직전에는 존나 쎘음 ㅇㅇ. 한국인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철종은 왕이 되기 전에 친척 집에서 종노릇도 해보고 주인에게 채찍질을 거의 매일 맞았다고 한다. 왕으로서의 평가는 좀 그렇지만, 개인으로써는 바지사장이긴 해도 조선왕조 역대급의 인생역전남. 뒤지기 1년 전인 1862년에 조선 역사상 유래없는 머국적 민란이 경상도 땅끝마을부터 함경도까지 퍼졌다. 이른바 임술농민봉기라고 하는 것인데, 정부에서는 안핵사를 파견해 이를 성공적으로 무마하게 된다. 사실 이때 나라가 뒤집혔어야 했다... 그래도 철종은 인성 하나는 좋았다. 암군이라고 깔지언정 폭군이라고 까진 말자. 자기가 백성이었던 시절이 있어서 [[동병상련]]으로 백성들 마음을 잘 이해하긴 했다. 사실 본인은 왕으로써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하고 싶었는데, 안동김씨들이 자기들 권력 유지하고자 귀족 위주의 정치를 펼치며 백성들 삶을 윤택하게 하지 못하게 막은거다. 당연히 자신이 실권도 없는 허수아비 왕이라는걸 자각한 철종은 다 포기하고 술이랑 여자에만 빠진거지. 이고깽 양판소 보면 머리에 피도 안마른 급식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 몇가지로 잘난채하며 왕노릇 하는 딸딸이 전개가 자주 나오나 현실은 잘해봐야 철종 루트임을 알 수 있다. 슬하에 5남 6녀를 두었지만 5남 5녀 모두 죽고(몇몇은 독살당한것으로 추정) 1녀만 살아남아 후에 그 딸이 시집을 갔는데 그 딸의 남편이 바로 친일파 [[박영효]]다. 이 양반이 [[1939년]]까지 살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근데 그 1녀도 결혼 3개월만에 요절했다. 솔직히 존나 잘 산 놈이다. ㅇㅇ 지 암짓도 안하고 안동 김씨가 다 해 먹는 대신 맨날 맛난거 쳐먹고, 술이랑 [[섹스머신]]이 무한 리필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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