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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길었던 창조적인 도둑질의 역사== 헬조선인들이 중계무역을 한 기록중 가장 오래된 것은 [[위만조선]]을 통해서 나타난다. 위만조선은 진과 한나라사이에 있었는데, 당시 한나라는 20세기 공산권처럼 제철산업이 국영산업이었고, 국가에서만 철을 판매했기 때문에 철수요량에 비해 철 공급량이 적었다. 그래서 진의 철을 수입해서 그 공급을 매우려고 했는데, 당시 항해/무역기술상 진의 철이 한나라로 오려면, 위만조선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위만조선은 이점을 이용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려 했다. 그래서 진과 한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면서 존나게 가격거품을 만듦으로써 존나게 돈을 많이 벌었다. 위만조선이 중계무역을 통해 창조적으로 도둑질을 하던게 꼴보기 싫었던 한나라가 그 이익을 자기가 독점하기 위해 위만조선을 먹어버린 것이 바로 왕검성 전투였다. 왕검성 전투에서 위만조선이 뒤지고, 한나라는 위만조선의 중심지에 낙랑군을 설치했는데, 이번에는 이 낙랑군이 [[황건적의 난]]이후로 중국이 개파탄이 났기에 중앙에서 신경을 안쓰고 요동의 [[공손도]]가 독자적인 세력구축을 위해 군사력을 업시키고 있었던 틈을 타 가야의 철을 싸게 수입해서 중국에 가격 거품을 만들어서 수출을 했다. 기원후 4세기 낙랑군과 요동군이 고구려에게 넘어간 뒤로는 헬조선의 삼국인 [[고구려]], [[백제]], [[신라]]는 서로서로 중계무역으로 폭리를 취하기 위해 교통의 요지인 [[화성시|당항성]], 죽령, [[파주시|칠중성]] 등을 먹기 위해 치킨 게임을 벌이고 [[케첩]]파티를 일삼았다. 삼국이 통일 되고 나서 [[신라|대신라]]와 [[발해]]의 경우도 중계무역으로 꿀을 빨았는데, 신라는 해로로 들어온 중국산 사치품(먹, 향)이나 헬조선산 사치품(인삼, 금)을 좆본에 존나 비싸게 팔아먹어 좆본조정이 신라침공계획을 짜거나 [[김태렴|모 사기꾼]]에게 낚여서 국고가 거덜나게 만들었다. 발해는 말갈을 통해서 들어온 '담비'가죽을 중계무역으로 존나게 팔아먹었다. 이때 담비를 팔러 간 길이 바로 '담비의 길'이다. 고려시대부터는 좆본이 존나게 커지게 되는데, 이때부터 헬조선은 좆본이 채집하거나 무역하거나 해적질해서 삥뜯어온 산호, 향신료등을 짱깨에 팔아넘기면서 존나게 폭리를 취했으며, 조선도 마찬가지로 왜관을 통해 들어온 좆본산 제품을 중국에 팔아넘기면서 재미를 많이 봤다. 해방이후 중국의 개혁개방이전 까지는 북괴새끼들이 이 중계무역으로 존나게 꿀을 빨았으니, 이놈들은 [[조총련]]을 통해 들어온 좆본산 물건을 짱깨(쏘오련은 1960년대부터 좆본과 이래저래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좆본 만화가 쏘련에서 상영될 수준이었음.)에게 존나게 팔아넘기면서 재미를 많이 봤다. 근데 한중수교하고 중국이 개방하면서 좆본산 물건을 직수입해오면서 그 재미를 다시는 못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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